
1. 영화 마지막 황제
이 작품은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연출의 1987년 영화입니다.
청나라, 더 나아가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의 유년 시절부터 신해혁명,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에서 문화 대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상영이 막을 내린 후에는 전 세계적 흥행 실적에 힘입어 홍콩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었습니다.
담담한 스토리 진행으로 자칫 심심한 영화로 비칠 수 있으나 관객의 눈을 빼앗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비주얼과 뛰어난 음악을 자랑하는 영화라 긴 러닝 타임이 아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특히 이례적인 중국 정부의 허락에 자금성 올 로케로 제작해 그 사실적인 규모와 미를 살려낼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천안문에 걸려있던, 마오쩌둥 대형 초상화를 촬영 기간 내내 실제로 내렸던 일화도 매우 유명합니다. 다만 이 때문에 당시 중국을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자금성을 방문하지 못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원래 1986년 10월 12일 자금성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다음날 10월 13일로 밀렸다고 합니다.
영화 음악은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과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사카모토 류이치와 충쑤(Cong Su)라는 음악가가 맡았습니다. 참고로 한스 짐머는 보조 프로듀서, 프로그래머로서 참여했습니다. 당연히 데이비드 번, 사카모토 류이치, 충쑤(Cong Su)가 공동 작곡한 곡들 연주에만 참여한 것이므로 제6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아카데미 음악상 부문 후보로 지명되지 못했습니다. 사카모토는 음악 외에도 만주국의 관제 단체인 협화회의 일본인 실세들 중의 한 사람인 아마카스 마사히코라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연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많은 기억에 남는 곡들이 탄생했으며, 특히 'Rain'이라는 곡은 매우 유명합니다.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긴장감을 줄 때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이 외에도 메인 테마곡 등 들어볼 만한 곡이 많은 영화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색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음향효과상·미술상·의상상 총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해당 부문을 싹쓸이한 명작입니다.
또한 감독판과 국내 개봉 극장판의 차이가 상당한 영화 중 하나입니다. 극장판에는 만주국 황제가 된 푸이가 군주로서 무언가를 해보려 하다가 자신이 일제의 꼭두각시임을 깨닫고 좌절하는 주요 장면들을 비롯해 상당한 씬들이 잘려있으므로 감독판을 볼 것을 추천합니다.
2. 줄거리

'푸이'(존 론)는 1908년, 겨우 3살의 나이에 청나라의 황제에 즉위합니다. 당시, 그의 즉위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서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푸이는 실제로 어린아이였기에 정치적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궁궐 내에서 어린 황제는 수많은 보살핌과 감시 속에 자라게 됩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철저하게 보호받고 통제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도, 실질적인 권력은 궁중의 고위 관리들과 외세의 손에 있었습니다.

청나라가 1912년에 멸망하고, 푸이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그는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만주국의 황제로 세워집니다. 일본은 푸이를 이용해 만주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고, 푸이는 사실상 일본의 통제 하에 있는 존재가 됩니다. 푸이는 만주국 황제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되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적 권한이 없으며, 일본 제국의 정치적 도구로서 살아갑니다. 만주국의 황제로서의 삶은 푸이에게 큰 고뇌와 무력감을 안겨주며, 그는 점차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이 시기 동안 푸이는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자아를 찾으려 애쓰지만, 점차적으로 심리적으로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만주국도 붕괴됩니다. 푸이는 중국 공산당의 승리와 함께 권력을 잃고, 1950년대 초반에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끌려옵니다. 이 시점에서 푸이는 사실상 중국의 일반 시민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후 푸이는 공산당 정부 아래에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으며, 일종의 정신적 재교육을 겪게 됩니다. 그는 과거의 황제라는 신분과 민간인의 현실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고통받으며, 궁궐에서의 화려한 삶과 현재의 참혹한 상황을 비교하면서 고독과 회한을 느낍니다. 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일상적인 삶을 살게 되며,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점차 평범한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만주국 포로를 수감하는 형무소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출소한 그는 평범한 정원사로 일상을 지내고, 자금성에 입장료를 내고 찾아가 과거를 회상합니다.

자금성은 관광지가 되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가이드가 "이곳이 중국의 황제가 즉위했던 태화전입니다. 마지막으로 즉위한 황제는 아이신기오로 푸이였습니다. 당시 3살이었습니다. 그는 1967년에 사망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3. 흥행과 평가
같은 해, 비슷한 소재의 스티븐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과 격돌했는데, <태양의 제국>은 스필버그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기대 이하의 흥행이지만 엄연히 흥행엔 성공했습니다. 반면 <마지막 황제>는 28주 동안 롱런하며, 4천4백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지만 제작비가 2380만 달러라는 걸 감안하면 흥행에선 실패했습니다. 이후 제60회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 후보/9개 모두 수상의 진기록을 세우고 영화사에 새겨진 걸작으로 남은 반면, <태양의 제국>은 스필버그가 아카데미상을 노린 애처로운 영화들 대표적인 예시로만 남았습니다.
완성도 자체는 이견이 없는 명작이나 몇몇 비평가 사이에선 베르톨루치의 전작에서 보인 역사와 사회, 정치, 성에 대한 날 선 시선 대신 오리엔탈리즘이 대신했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이는 중국 본토 개봉 시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로도 베르톨루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입각한 영화들을 연달아 제작하여 개봉했는데, 결국 서구 영화를 찍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지금은 중국 내에서도 재평가받아 중국의 관객들과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더우반에서는 10점 만점에 9.3점을 기록,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 몇 안되게 인정하는 서양권 제작의 중국 배경 영화라는 반응입니다.
영화 중간에 전범 수용소에 수감된 푸이가 정치교육을 받던 중 교도관들이 중일전쟁 다큐멘터리를 틀어주는데 일본에 개봉할 당시 배급사 쇼치쿠가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난징 대학살 사건 등 일본군의 만행을 다룬 기록 필름 상영 부분을 삭제하여 문제가 되었습니다. 감독의 엄중한 항의를 받고 결국 원본대로 상영하였는데, 일본인 관람객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지 편집 전후 여파에 관계없이 흥행은 성공적이었고 평도 좋았습니다. 푸이 역할의 존 론도 주목을 받아 일본 산토리 위스키 광고와 가네보 남성 화장품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영화 이후 베르톨루치의 커리어는 줄곧 내리막을 걸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2003년에 개봉한 <몽상가들>이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평가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 뒤로 슬럼프 상태에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촬영 당시 여배우의 실제 수치를 끌어내기 위해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버터를 윤활제로 사용하게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상당히 욕을 먹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범작들을 만들며 잊혀지다 2018년 77살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 출연한 동양계 미국 배우 존 론(푸이 역)과 조안 첸(완룽 역)도 이후 커리어가 희미해져 이 영화는 감독이나 배우들에게는 생애 최고이자 꼭대기 같은 작품이 된 셈입니다. 다만, 푸이의 교사인 존스턴 역을 맡은 피터 오툴은 그 후로도 계속 여러 대작에 출연했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피터 오툴이야 이미 워낙 거물급 명배우지만 말입니다.

4. 비판
선통제의 삶을 동정하는 시선으로 그려내다 보니 너무 과한 미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서부터 어른이 된 후로도 주변 인물에게 화풀이로 한 행위들이 축소되었습니다. 오히려 똑같이 푸이를 다룬 중국 드라마 <말대황제>에서 선통제를 (실제보다 다소 순화되긴 했어도) 미화 없이 묘사한 편입니다.
물론 그가 어렸을 때부터 궁궐이라는 담장 안에서만 자라와 급변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크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전 중국의 황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성인이 된 후에도 주도적으로 다시 중국에 군주제를 복고하기 위해 여러 음모에 참여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마치 납치되어 끌려다니는 무력한 개인처럼 묘사한 것은 본질을 흐리고 미화한 묘사입니다. 따라서 전범에 대한 미화 영화라는 비판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상당히 담담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어쨌건 주인공이 선통제이며 영화의 기반이 그의 자서전이다 보니 동정어린 시선들이 많이 포함되기는 했습니다.

5. 마무리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닌 이유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삶과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푸이는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은 결국 그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 황제>는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푸이가 보여준 조용한 미소가 그 답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황제>는 웅장한 스케일과 아름다운 촬영 기법, 그리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황제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푸이의 인생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황제>를 보며, 우리는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진정한 자유를 살고 있는가?"
이 영화가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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