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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중경삼림>

by 채채둥 2025.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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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경삼림' 포스터

1. 영화 중경삼림

  이 작품은 왕가위가 연출하고 양조위, 임청하, 금성무(카네시로 타케시), 왕페이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입니다.
왕가위를 국제적으로 알린 글로벌 출세작입니다. 한국에는 1995년 9월에 개봉했는데, 이 작품으로 한국에는 이른바 '왕가위 열풍'이 불었습니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서울 개봉관 관객 각각 126,953명, 151,163명을 기록하였는데 , 1990년대 당시 영화 시장 규모와 소극장 개봉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선방한 기록입니다. 당시에는 서울 관객 20만 정도면 흥행에 그럭저럭 성공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이들 작품은 흥행 기록에 잡히지 않는 재개봉관의 장기 상영과 비디오 시장에서 더욱 흥행했습니다.
 1995년 홍콩 영화 금상장 4개 부문(작품·감독·남우주연상·편집)을 수상했고, 1994년 대만 금마장 영화제 남우주연상, 1994년 스톡홀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2. 줄거리

  구룡반도의 청킹맨션 주변을 배경으로 한 1부와 홍콩섬의 센트럴 지역을 배경으로 한 2부, 실연을 겪는 두 남자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두 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됩니다.
1부는 금발 가발을 쓴 여자(임청하)와 경찰 223(금성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룻밤의 미묘한 만남을, 2부는 경찰 663(양조위)과 식당직원 페이(왕페이)의 교감을 그렸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5월 1일은 사복경찰 경찰 223 ‘하지무‘(금성무)의 생일이자 옛 애인 아미와 헤어진 지 한 달 되는 날입니다. 시간만 되면 단골 식당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헤어진 옛 애인을 기다리는 하지무는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통조림을 4월 30일 내내 찾다가 한 편의점의 직원을 통해 1994년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 더미를 받게 됩니다. 그날이 되도록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기로 혼자 마음먹습니다.

 ‘금발 가발의 여인‘(임청하)은 마약 밀매업자입니다. 바에서 백인 보스로부터 봉투를 건네받고, 마약 밀매를 위해 운반책인 여러 인도인들의 옷과 짐, 그리고 항문에 마약을 숨기고 공항으로 인솔해 가지만, 수속을 밟는 동안 인도인들이 마약을 가지고 사라집니다. 보스를 만나기 위해 그의 바에 가지만 그는 없고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정어리 통조림만을 전해받습니다. 바 뒤편에서는 인도인과 보스가 이야기를 합니다. 금발 여인은 사라진 인도인들을 찾기 위해 충킹맨션 주변을 뒤지고 다니며, 잠깐동안 유괴를 하기도 합니다. 5월 1일이 되고, 여인은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인도인들을 사살하고 그들의 무리에 쫓기다가 가까스로 침사추이역으로 가 MTR 췬완선 열차를 타고 도망칩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5월 1일까지 하지무는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렸지만 옛 애인에게서는 감감무소식이었고, 도리어 그녀의 전화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까지 흘러나옵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알바를 하는 또 다른 '아미'의 존재를 상기한 그는 그녀와 심야 영화라도 볼까 하고 찾아가지만 하지무를 내심 좋아했음에도 반응이 없는 그 대신 자신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리처드라는 남자와 이미 떠난 상태였습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공중전화로 기억나는 인맥들에게 전화를 돌려 술 한잔 하자고 해봐도 인맥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합니다. 하룻밤 새 두 명의 아미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크게 실망한 그는 그동안 사놓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다 먹어버리고 술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데, 그때 들어오는 여자는 지칠 대로 지친 금발 가발의 여인이었습니다. 둘은 취하도록 술을 마셨고, 하지무는 쉬고 싶다는 그녀를 호텔로 데리고 갑니다. 그녀는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뻗어 버렸고 하지무는 영화를 보고 샐러드를 시켜 먹다가 그녀의 더러워진 신발을 벗겨 넥타이로 깨끗이 닦아놓은 후 그녀가 깨기 전에 조용히 떠납니다. 오전 6시에 스물다섯이 된 하지무는   운동장을 질주한 뒤 이제 자신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삐삐를 운동장에 버려두고 떠나려 하지만, 삐삐가 울립니다. 그에게 도착한 메시지는 금발머리 여인, 702호실 친구로부터의 생일 축하 메시지였습니다. 하지무는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일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며 그녀와의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는 내레이션을 읊조립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바가 다시 보이고, 보스와 금발 가발을 한 여자 바텐더가 스킨십 중입니다. 바깥에서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에 이끌린 보스가 뒷문 밖으로 나가보니 새끼 고양이들이 초반에 나온 정어리 통조림 주위에 모여 있습니다. 통조림을 주우려 몸을 숙인 그의 뒤에서 나타난 금발 여인이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입니다. 금발 가발을 벗어던지고 떠나는 검은 머리를 한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잡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통 기한이 5월 1일인 통조림이 클로즈업됩니다.
 이후 하지무가 자주 가는 식당주인이 하지무에게 2부의 주인공 페이를 소개해주지만 두 사람은 남남인 것으로 1부가 끝맺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하지무가 자주 가는 식당의 점원 ‘페이‘(왕페이)는 가게에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을 틀어놓고 캘리포니아로 떠날 꿈을 꾸는 몽상적인 사람입니다. 매일 가게에 들러 음식을 사 가는 ‘순찰 경찰 663‘(양조위)에게 호감을 느끼던 페이는 663과 한때 연인 관계였던 스튜어디스가 663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한 편지 봉투를 몰래 열어 보게 되는데, 봉투 안에는 '취소' 도장이 찍힌 항공권과 'Change of flight. Your place cancelled(항공편 변경, 당신 좌석은 취소됐어)'라고 적힌 이별의 편지, 663의 집 열쇠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후, 663이 식당에 방문했을 때, 사장과 직원들은 자리를 비웠고 페이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습니다. 페이는 편지를 전하고, 663은 커피를 마시고 보겠다고 말합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지불한 663에게 페이는 편지를 왜 가져가지 않냐고 하자, 그는 페이에게 나중에 와서 가져가겠다며 보관해 달라고 합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시장에서 663을 만난 페이는 편지를 우편으로 부쳐준다는 것을 빌미로 그의 주소를 알게 되고 종종 그의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 집을 청소하며 집에 남아 있는 전애인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 나갑니다. 자신의 집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던 663은 어느 날 옛 애인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낮에 집에 들렀다가 물바다가 된 집을 발견하게 되고, 천연덕스럽게 금붕어를 사서 집으로 들어오던 페이와 마주칩니다. 663은 놀라 쥐가 난 페이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고, 긴장이 풀려 잠들어버린 페이와 오후를 함께 보냅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며칠 후 순찰 중이던 663은 자기 집 창문에서 또 자기 집인 것처럼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페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갑니다. 청소를 마치고 집을 나서던 페이는 문 앞에서 663과 마주치고 놀라 문을 잠가버립니다. 663은 문을 걷어차고 집에 들어가지만 페이는 도망가버립니다.
 663은 식당으로 페이를 찾아가 '8시에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리겠다'는 데이트 신청을 하고, 페이가 자신의 옷장에 걸어둔 옷을 입고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술집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녀는 오지 않았고, 대신 페이의 사촌 오빠인 패스트푸드점 주인이 편지 봉투를 전해주었습니다. 이별의 편지임을 직감한 663은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은 채 휴지통에 버렸다가, 다시 돌아와 비에 젖은 편지를 말려 읽습니다. 편지는 페이가 항공권을 흉내 내 그린 편지였는데, 출발 일자는 1년 후, 목적지는 비에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사실 페이는 7시 15분에 술집 캘리포니아로 갔지만, 진짜 캘리포니아 날씨가 궁금해져 자신에게 1년의 시간을 주고 떠나간 거였습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후, 스튜어디스가 되어 홍콩으로 돌아온 페이는 술집 캘리포니아에서 술을 마시다 과거 자신이 일했던 사촌 오빠의 가게를 찾아가는데, 셔터가 내려진 그곳에는 경찰을 그만두고 가게를 인수한 663이 내부를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안부를 묻고 비행 틈틈이 편지를 달라고 부탁하는 663에게 페이는 읽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편지를 달라고 하냐고 툴툴대지만, 그는 비에 젖어 번져버린 편지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이걸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녀가 다시 발행해 주겠다고 옆에 있던 냅킨과 펜을 가져와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자, 그가 대답합니다.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한구석의 오디오가 비치고 음악이 나오며 영화는 끝납니다.

3. 평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놀랍도록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화이고 홍콩을 배경으로 이별과 만남을 퇴폐적이고도 탐미적으로 연출한 영화입니다.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사랑이란 감정 자체에 대한 영화, 홍콩을 상징하는 동시에 1990년대의 도시적 센티멘틀리즘을 잘 그려낸 영화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왕가위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가벼운 작품으로 꼽히는데, 은유와 상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왕가위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중경삼림>의 스토리는 전혀 난해할 것 없이 감성적이고, 시각적으로는 왕가위 특유의 흘리듯 촬영한 미장센이 빛을 발합니다.
 이는 <동사서독>의 긴 촬영으로 지쳐있던 왕가위가 오랜만에 홍콩으로 와서 가볍고 즉흥적인 촬영 방식으로 만든 영화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덕분에 대중들도 신선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중경삼림이 개봉한 1995년의 한국 영화 흥행작은 '닥터봉', '돈을 갖고 튀어라' 등의 코미디 물이고, 이런 가벼운 상업성 영화가 아니면 굳이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돈 주고 보는 것을 아까워할 만큼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이 별로 좋지 않던 시절입니다. 이런 시기에 영상미와 감성을 세련되게 연출한 왕가위 영화의 등장은 당시 X세대에게 컬처 쇼크에 가까웠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다만 그 열풍의 파급 효과는 어설픈 복제와 표절로 나타났습니다. 1990년대 후반 영화, CF, 드라마,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상매체에서 왕가위 스타일을 흉내 냈습니다. 장동건, 최진실 주연, 김의석 연출의 <홀리데이 인 서울>이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영화 팬들이 인생 영화를 꼽을 때 거론되는 손꼽히는 명작으로, 19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영화감독이나 영화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본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10대에 볼 때와 20대에 볼 때, 그리고 30대가 넘어서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며, 경험이 쌓여갈수록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 영화가 여전히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고 되새겨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다만 왕가위의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호불호가 강한 만큼 본인의 취향이 맞지 않을 경우라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박찬욱은 본인이 선정한 과대평가된 영화 TOP 10 중 하나로 중경삼림을 꼽기도 했습니다. 박찬욱은 이 영화에 대해 "고독한 게 뭐 자랑인가? 고독하다고 막 우기고 알아달라고 떼쓰는 태도가 거북하다. 특히 타월이나 비누 붙들고 말 거는 장면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는 일부의 반응이고, 그 자체로 명작 반열에 올라 있으며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영화입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4. 사운드트랙

  영화에 인상적으로 삽입된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이 뒤늦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이미 은퇴한 마마스 앤 파파스가 1996년에 내한 공연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OST 중 <California Dreamin'>과 함께 영화를 대표하는 곡 <몽중인>은 왕페이가 직접 불렀습니다. 결말의 여운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흘러나오는 <몽중인>이 가히 압권입니다. 크랜베리스의 <Dreams>를 번안한 곡이지만 한국에서는 중경삼림 OST 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곡 다 발표 당시 영화와는 무관한 곡들이었지만 <중경삼림>에 삽입된 후 이들 곡을 들으면 조건반사로 이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왕페이가 직접 부른 몽중인이 더 유명해져 원곡의 크랜베리스가 부른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스틸컷

5. 마무리

  영화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의 독특한 감성과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고독과 사랑,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영화는 두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주인공들이 도시의 소음 속에서 외로움과 상실을 견디며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홍콩의 도시 풍경과 대비되는 인물들의 느릿하고 감정적인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왕페이와 양조위가 등장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경쾌한 음악과 감성적인 연출로 관객의 감정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현대인의 정서와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감정의 연결을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