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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력 위의 폭력, 정의란 무엇인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by 채채둥 202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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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포스터

1.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이 영화는 드니 빌뇌브의 범죄 액션 스릴러 영화로 2015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음악상, 음향편집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장소인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지역 후아레스가 무대이고, 미국 내 정보기관인 CIA와 수사기관인 FBI 사이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국정원이나 경찰을 대입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화 1987에 나오는 군사정권 시절의 보안사,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와 서울지검 공안부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이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2. 줄거리

 미국 국내에서 주로 작전을 수행해온 FBI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요원은 납치당한 인질을 구하기 위해 애리조나에 있는 멕시코 카르텔의 멤버 ‘마누엘 디아스‘(베르나르도 P. 사라시노)의 건물을 습격합니다. 총격전 끝에 카르텔 멤버들을 제압했지만 폭발물로 인해 경찰 2명이 사망하고 벽 안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스틸컷


사건 이후 케이트는 파트너 ‘레지‘(다니엘 칼루야)와 함께 FBI의 사무실로 호출됩니다. 케이트가 맡았던 사건의 배후인 소노라 카르텔을 응징하기 위해 특별 수사팀이 꾸려졌고 CIA 출신의 ‘맷‘(조슈 브롤린)이 케이트에게 수사팀에 합류할 것을 제안합니다. 케이트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멕시코와 근접한 미국의 영토 앨패소로 같이 향하기로 합니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중 맷


케이트는 맷, 그리고 의문의 컨설턴트 ‘알레한드로‘(베네시도 델 토로)와 전용기를 타고 이동합니다. 작전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한 케이트는 알레한드로로부터 사실 그들이 가는 곳은 앨패소가 아니라 그곳과 근접한 멕시코의 영토 후아레스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맷은 특수부대 델타 포스의 요원들과 함께 카르텔의 간부 ‘기예르모‘(에드가 아레올라)를 미국으로 호송하는 브리핑을 하고, 케이트는 알레한드로가 콜롬비아 출신인 걸 알게 되는데 자신에게 아무런 정보 공유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는 맷에게 불만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맷은 하기 싫으면 작전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케이트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 작전에 참가합니다. 기예르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후아레스의 길거리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널려있었고 계속해서 총소리가 들려서 케이트는 긴장하게 됩니다.
기예르모를 차에 태우고 미국 영토로 들어왔는데 교통 체증으로 인해 정차하게 되었고, 일행은 근처의 차량 2대에 탄 카르텔의 조직원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걸 감지하게 됩니다. 델타 포스 요원들은 차에서 내려 조직원들이 총을 꺼내기 전에 먼저 사살하고 케이트는 교전 수칙을 무시하는 처사에 경악합니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스틸컷

 

알레한드로는 카르텔의 소굴을 알아내기 위해 기예르모를 물고문하고, 맷과 알레한드로는 멕시코 불법 이주자들을 무단으로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케이트를 데리러 온 레지는 이 같은 처사를 보다 못해 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고, 맷은 밀입국자들로부터 카르텔 보스가 사용하는 땅굴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심문한 것이며 마누엘 디아스가 보스를 찾아가게 하기 위해 계좌를 동결시킬 것이라는 계획을 말해줍니다.
맷은 지금의 증거로 기소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케이트를 말리지만 케이트는 이를 듣지 않고 은행으로 들어간 뒤 관계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케이트는 그동안 쌓인 불만을 FBI의 상관에게 이야기하지만 상관은 카르텔 간부 한 명을 기소한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맷의 비합법적인 일은 높으신 분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케이트는 분을 삭이지 못하였고 레지와 함께 근처 술집에 술을 마시러 가는데 거기서 우연히 레지의 동료 경찰관 ‘테드‘(존 번탈)를 만나 합석합니다. 테드와 호텔에서 잠자리를 함께 하려다 테드의 소지품 중 카르텔 멤버들이 쓰는 고무 밴드를 보게 됩니다. 테드가 카르텔에 매수된 경찰인 걸 깨달은 케이트는 총으로 손을 뻗지만 이내 테드에게 제압당합니다. 목이 졸려 죽을 위기에 처한 그때 알레한드로가 등장해 테드는 체포됩니다. 알레한드로는 케이트가 은행에 들어갔을 때 CCTV에 그녀의 얼굴이 찍혀 카르텔에 노출될 것을 예상했었고, 테드를 폭행하고 고문한 뒤 딸을 빌미로 협박해서 매수된 경찰들과 땅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합니다. 케이트는 자신이 미끼로 쓰인 사실을 알게 되고 맷과 알레한드로의 불법적인 수사를 겪으며 괴로워합니다.
불법 이주자들과 테드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땅굴의 위치를 파악한 수사팀은 델타 포스를 동원해 땅굴을 습격합니다. 땅굴에서는 조직원들과 수사팀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알레한드로는 홀로 다른 출구를 통해 빠져나갑니다. 땅굴에서 빠져나온 알레한드로는 매수된 경찰 ‘실비오‘(맥시밀리아노 헤르난데즈)가 조직원으로부터 마약을 건네받는 것을 목격하고 조직원을 사살합니다.
알레한드로는 실비오와 함께 차에 타고 멕시코 영토 안으로 이동하였고, 수사팀 쪽으로 나온 케이트는 맷을 향해 주먹을 날립니다. 흥분한 레지도 도우려 했지만 이내 저지당했고 케이트를 제압한 맷은 케이트에게 애초에 이 작전은 카르텔을 소탕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범죄를 일으키는 소노라 카르텔의 보스를 죽여 제압한 뒤 예전부터 적당히 마약 장사를 하며 미국 정부와 CIA의 말을 잘 따르던 메데인 카르텔에게 패권을 넘겨주기 위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들려줍니다. 계속해서 맷은 알레한드로가 지방 검사였는데 소노라 카르텔에게 그의 아내가 살해당하고 딸은 염산통에 던져지는 비극을 겪었으며, 그가 소노라 카르텔에게 복수하기 위해 메데인 카르텔의 연줄을 타고 CIA에 고용된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에서는 CIA와 미군만 독단적으로 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불법이었기에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FBI의 케이트를 영입했다는 이야기도 해줍니다.
처음에 레지 대신 케이트를 선택한 것도 레지는 법학도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법으로 따져 것이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케이트는 그저 들러리였기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스틸컷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중 알레한드로

한편 소노라 카르텔의 보스 ‘파우스토‘(줄리오 세딜로)의 집에 도착한 알레한드로는 실비오와 마누엘, 그리고 경호원들을 모두 사살한 뒤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파우스토에게 다가갑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한 파우스토는 아내와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파우스토의 가족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파우스토마저 사살합니다.
사건이 마무리된 뒤 홀로 숙소의 발코니에 서있던 케이트에게 알레한드로가 접근합니다. 알레한드로는 케이트가 자신의 죽은 딸을 떠올리게 한다며 지금까지 한 모든 작전이 합법적이었다는 문서를 들이민 뒤 케이트에게 서명하라고 합니다. 케이트는 울먹이며 이를 거절하지만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의 턱에 총을 겨누면서 자살을 당할 수도 있다고 협박합니다. 케이트는 결국 서명하고 집을 나서는 알레한드로에게 총을 겨누지만 끝내 쏘지 못합니다. 이후 실비오의 아들이 평화롭게 축구를 하는 모습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납니다.

3. ‘시카리오‘의 해석

 시카리오(sicario)는 남유럽과 중남미에서 보통 자객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 로마 제국 시대에 극단주의 반로마 저항조직인 유대 열심당의 일파로서 로마 고관과 부역자들을 단검(sica)으로 암살하던 이들이며, 오늘날에는 일부러 고위 법관, 선거정치인, 경찰, 군인을 린치 살해하는 암살자와 테러범의 성격을 모두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히트맨이라고 알려진 이들 보다 한술 더 뜨는 존재들로서 지금까지 이탈리아와 중남미의 범죄 카르텔, 마피아들의 공포정치를 가능케 해온 동력원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카르텔들의 입장에서는 미국 CIA 특수활동부야말로 무소불위의 시카리오가 따로 없다는 점이라 난 것입니다.
이 영화는 카르텔 소탕이라는 무대 위에서 미국의 정의와 원칙을 상징하는 FBI와, 법이 작동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CIA의 대립을 통해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모순과 본질을 은유하는 이야기이며, 정의라는 가치가 거대한 폭력 앞에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스틸컷

4. 평가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는 자그마치 92%, 평균 8/10로, Certified Fresh 등급을 받았급니다. 국내 평론가들도 이에 못지않게 후한 점수를 주며 호평했습니다. 영화가 주는 긴장감과 압박감을 주로 호평했습니다. 요한슨이 담당한 영화 내내 흐르는 BGM의 심장박동 같은 효과음은 영화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한 층 더 격앙시키는 훌륭한 도구로 작용합니다. 특히 영화 초반의 국경 장면은 역대급 장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내 영화 스태프들도 극찬했던 작품으로, <곡성>의 홍경표 촬영감독, <아가씨>의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이 인상적인 작품 TOP3 안에 포함시켰고, 류승완, 최동훈 감독 등이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중 알레한드로(베네시오 델 토로)

5. 마무리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늘한 긴장감과 황량함이 일품이었고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깊이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최고의 음향과 영상미는 영화를 보는 맛을 더해주었고 개성 있는 세 명의 등장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흠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특히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알레한드로를 연기한 베네시오 델 토로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작품 중 가장 뛰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르텔을 소재로 한 영상물 중 드라마에서는 나르코스가 최고라면 영화에서는 시카리오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소재와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꼭 보아야 할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