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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앙과 공포가 맞닿은 그 순간, <랑종>

by 채채둥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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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랑종' 포스터

1. 영화 랑종

 이 작품은 2021년 7월 14일에 국내 개봉한 한국-태국 합작 공포 영화로,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의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충격적인 현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제작을 맡았고, <셔터>와 <피막>으로 잘 알려진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습니다.
 주요 출연진으로는 무당 ‘님’ 역의 싸와니 우툼마가 깊은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고, 조카 ‘밍’ 역은 신인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이 트라우마적 강렬함을 표현하여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 외 씨라니 얀키띠칸, 야사카 차이쏜 등의 태국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다큐멘터리 방식(페이크 다큐)에 기반했으며, 실화 같은 생생함과 함께 거친 공포로 평가받았습니다.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고, 국내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으며 높은 수위와 독특한 연출 방식에 대한 화제가 많았습니다. 국내외에서 흥행하며, 개봉 첫 주말 1억 원의 수입을 기록했고, 태국 현지에서는 2021년 10월 28일 공식 개봉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는 나홍진·반종 감독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원격 소통으로 협력했고, 태국 현지어와 전통 풍습의 리얼리티 구현에 매우 신경을 쓴 것이 뒷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랑종(ร่างทรง, RANG ZONG)은 태국어로 영매, 무당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제목은 ‘The Medium‘으로 ‘귀신과 사람의 매개체’라는 뜻입니다.

2. 줄거리

 태국 이산 지방을 배경으로 한 다큐팀은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을 따라가며 바얀 신을 모시는 그녀의 가문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님은 언니 ‘노이‘(시라니 얀깃티칸)의 딸 ‘밍‘(나릴야 군몽콘켓)이 최근 보이는 이상 행동이 신의 선택인지 악령의 징조인지 파악하려 합니다. 밍은 밤마다 사라지고 다른 목소리로 말하며 동물 눈을 먹는 등 점점 통제 불가능한 기이한 행동을 보이고, 님은 그녀가 바얀이 아니라 여러 악령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영화 '랑종' 중 노이와

 

영화 '랑종' 중 님

 노이 가족에게 대대로 이어진 저주와 남편의 비극적 과거가 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님은 굿을 준비하지만 자신에게서 바얀이 떠났음을 깨닫고 의식은 실패합니다. 님은 다른 무당 싼티와 함께 밍을 구하기 위한 구마 의식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님은 원인 불명으로 자다가 사망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티는 구마 의식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밍 안의 악령의 계략으로 인해 구마 의식은 실패하고 싼티는 악령에 홀려 자살하고 맙니다.

영화 '랑종' 중 싼티의 구마 의식

밍 안의 악귀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여러 원혼이 얽힌 집단 악령으로 드러나고 의식 중 악귀는 구마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를 옮겨 붙으며 무당들과 촬영팀이 서로를 공격해 대규모 아수라장이 벌어집니다. 그 후 밤새 이어진 폭주와 잔인한 학살 끝에 다음 날에는 밍의 가족과 촬영팀, 무당 대부분이 죽고, 밍만이 인간이라 보기 어려운 상태로 살아남습니다.

무서운 사진은 작게... 빙의된 밍

 이 모든 잔혹한 참극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제작진이 다큐멘터리 제작 중에 제외시켰던, 님이 죽기 전에 인터뷰한 영상이 나오는데, 사실 님은 자신에게 깃든 존재가 바얀 신이라 단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으며 구마의식이 성공할지,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 나도 모르겠다며 회한에 젖어 눈물을 흘립니다. 님의 흐느낌을 뒤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3. 평가

<개봉 전>
 초기 시사회의 후기들은 평가가 좋으며, 대체로 공포감이 강하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특히 빙의된 밍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되는 장면과 퇴마 의식 장면인 후반 1시간의 공포가 꽤나 압도적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 특유의 음산하고 축축한 분위기도 한몫을 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님'을 연기한 싸와니 우툼마의 호연이 돋보이며, 특히 신인 배우이면서도 후반부에 트라우마가 생길 수준의 악마적 연기를 보여준 밍 역의 나릴야 쿤몽콘켓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종 감독의 전작인 <셔터>나 <샴>과는 달리 중후반까지는 점프 스케어가 주력인 영화가 아니라 분위기로 조금씩 조여드는 공포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이런 류의 공포감보다 <컨저링> 유니버스 작품들이나 <곤지암>처럼 시종일관 놀라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서 중후반까지는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봉 후>
유료 시사회 이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일반 관객들의 평은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호평의 경우는 숨통을 조여 오는 긴장감과 빙의된 밍이 상당히 무서웠다고 말하는 반면 혹평의 경우는 대부분 '평론가들이 호들갑 떤 것에 비해 무섭지는 않고 불쾌한 장면만 많았다.', '일부 배우들의 연기가 거슬렸다', '바이럴 마케팅이다', '억지스럽고 답답한 전개의 연속이다'라는 평이었습니다. 덤으로 순수하게 이 영화에서 얼마나 공포를 느끼느냐조차도 개인차가 심하다 보니,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는 평을 듣고 보러 갔다가 무서워서 죽을 뻔했다며 화를 내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특히 평이 나쁜 부분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면서도 리얼리티라고는 없는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연출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다 보니 전반부의 분위기가 마치 인간극장 느낌이라 지루하고, 공포영화의 클리셰적인 연출이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한 캐릭터들이 많고 특히 후반에는 관객 모두가 '저러면 안 되지' 싶은 짓들만 골라하고 있습니다. 구마 의식에서 정신 나간 인선 배치 등 후반부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클라이맥스 부분은 동료가 공격당하는데 구출하려고 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그걸 아주 뷰파인더로 보고 있는 양 정확하게 찍고 있는 카메라맨 등 그냥 봐도’ ‘아 저건 뭐 하자는 거지’하는 듯한 장면들 투성입니다. 거기다 초반에는 귀신이 들린 인간도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후반에는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것도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후반부는 좀비 먹방이냐는 비아냥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나홍진 감독의 전작 <곡성>과 같이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복선을 깔아 두고서는 떡밥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열린 결말인 양 마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습니다. 물론 굳이 지나칠 정도로 딱딱 복선을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결말 암시가 어느 정도 틀이 잡혀있어야 하는데 결말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사람도 꽤나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곡성>의 성공으로 인해 평단과 대중들의 관심이 모여진 나홍진 감독이 너무 힘을 주어 작품을 설계하다 난잡한 결과물이 되었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전작의 성공을 너무 의식하다 작품이 산으로 간 경우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작중 등장하는 소재들이 너무 자극적이라 구역질이 났다는 평도 존재합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하고 있어서 핸드헬드로 촬영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으면 멀미가 심할 수 있으며, 후반부 화면 연출이 유치하다는 혹평도 있습니다.
랑종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썼지만 정작 영화의 내용, 연출, 구성 부분에서는 그다지 신선한 요소가 없고 기존 파운드 푸티지 형식 공포 영화를 답습한 평범한 영화라는 점에서 실망하는 의견도 다수 있습니다. 개봉 전 입소문에 비해 평가가 낮은 것은 이 때문일 것입니다.

밍을 위해 기도중인 님

4. 영화의 해석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굳이 안 읽으셔도 될듯합니다)

1) 밍의 꿈에 나온 존재는 무엇인가?

 밍은 초반부에 꿈에 대해 제작진에게 이야기하며, '온몸에 부적이 붙은 빨간색 전통 옷을 입은 커다란 남자가 큰 칼을 들고는 혀를 길게 빼서 칼을 핥으면서 춤을 추고, 그 주위가 온통 피바다이며 바닥에 잘린 머리가 하나 있는데 그 잘린 머리가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작품 중반부에 바얀 신 신상의 머리가 잘리는 장면이 있어 작중 잘린 머리는 머리가 잘린 바얀 신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바얀 신이 밍을 지켜주기 위한 소통을 시도했으나 밍은 이미 악귀에게 빙의당한 상태였기에 접촉 시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평면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작품 내에서 바얀 신의 신상은 붉은색 천을 어깨에 휘감은 형상으로 묘사되기에 실은 붉은 전통 옷을 입고 칼을 든 남자가 바얀 신이고 잘린 머리가 악귀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칼을 든 남자가 악귀일 경우 이 장면은 후반부 전개의 복선이자 악귀가 처음부터 바얀 신을 제압할 정도로 강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칼을 든 남자가 바얀 신이었을 경우 바얀 신은 밍에게 빙의하려던 악귀의 목을 잘라 지켜주고 있었지만, 밍이 들리지 않는 악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알아들으려고 노력한 탓에 악귀에 홀린 사태가 발생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2) 바얀 신상의 목이 잘린 이유는 무엇인가?

 목이 잘린 남자가 바얀 신을 묘사한 것이었을 경우 악귀의 힘이 바얀 신을 넘어설 정도로 강해져 바얀을 무력화한 것이라는 암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밍의 꿈에 나온 목이 잘린 남자가 바얀 신이 아니고 악귀였다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나오듯이 님은 일련의 사태에 의해 조금씩 흔들리다가 바얀 신의 신상이 부서진 걸 보고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데, 바얀은 자신의 랑종인 님조차 자신을 믿지 않고 흔들리자 신상의 목을 직접 치는 것으로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바얀 신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던 노이가 바얀 신상의 목을 잘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노이는 신내림을 받지 않기 위해 바얀 신을 계속 멀리했고, 나중엔 어서 바얀 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권유하는 님에게도 바얀 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묻는 등 바얀 신의 존재를 계속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3) 마지막에 노이에게 빙의한 존재는 무엇인가?

 작품 최후반부의 구마 의식 실패 후 노이는 자신에게 바얀 신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좋아합니다. 이는 노이가 님에게 "바얀 신을 본 적 있냐"라고 물었을 때 님이 "본 적은 없지만 느낄 수 있다"라고 답한 대사의 연장선입니다. 하지만 바얀 신이 빙의했다고 자칭한 노이는 싼티의 제자들이 애써 구마의식을 재개했으나 갑자기 향을 거꾸로 박아 버리는 부정적인 행위를 하며, 이로 인해 의식 장소에 있는 퇴마사들은 악귀에 빙의되어 전부 죽고 맙니다. 여기에 더해 작품 마지막에서야 나오는 님의 인터뷰 장면에서 님은 자신에게 들어온 존재가 바얀 신이라고 확신한 적이 없다는 대사를 함으로써 앞서 말한 '느낌'이라는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부정했기에 노이의 느낌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의 여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이에게 들어온 존재는 바얀 신이 아니라 바얀 신을 빙자하는 악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후반부 장면에서 노이가 자신도 모르는 퇴마 문구를 읊자 이 문구를 들은 밍은 행동을 멈추고 고통스러워하며 엄마를 찾는 등 노이가 진짜로 영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시점에서의 밍은 수많은 원혼들에게 빙의되어 엄청나게 강력해진 상황이기에 이 상태의 밍조차 제압할 수 있는 영력을 가진 존재가 그저 악귀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밍에게 들린 악귀가 노이의 목을 조르는 장면도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노이에게 온 것이 신인지 악귀인지 관객들의 평은 분분합니다.
 어쩌면 그저 여러 악령들 중 하나인 잡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는 합니다. 당시 장면은 몇몇 감독을 제외하고 의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밍에게 씌었던 여러 악령들에 씌어 말 그대로 지옥도, 아수라장이 펼쳐진 상황이었는데 노이라고 달라야 하는 법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마침 밍에게 씌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얀 신을 참칭한 전적도 있으니 그럴 싸하게 들리긴 합니다. 노이가 밍을 제압하는 장면도, 그저 어떤 잡신이 또 다른 강한 악귀를 제압하려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저 어떤 목적도 없이 살육과 광기로 가득한, 말 그대로 생지옥, 아수라도가 펼쳐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모호한 선과 악의 경계라는 나홍진의 세계관이라면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해석이기도 합니다.


4) 님은 왜 죽은 것인가?

 작중 님의 사망을 라이따이로 표현하지만 정말 그 뜻대로 자는 도중 편히 사망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님이 정말 라이따이로 사망했다면, 바얀이 그동안 자기를 오랫동안 모셨던 님이 닥쳐올 파국을 피해 갈 수 없게 되자 마지막 권능을 발휘해 편하게 먼저 보내줬을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날 벌어진 목불인견의 지옥도를 생각하면 그나마 피를 덜 보고 간 님 쪽이 훨씬 호상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만 바얀신을 모시는 상이 어지럽혀있고 구더기가 들끓으며 님이 침대에서 반대로 누워 사망한 것을 보아 자는 듯 편히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바얀신 석상의 목이 잘린 시점부터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바얀신에 기반한 영적 능력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장면인 인터뷰에서 기도를 하던 님이 불안감에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신경질적으로 던져놓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제단이 어지럽혀져 있거나 엎드려 누운 상태로 죽은 채 발견된 것이 악령이나 신의 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님이 라이따이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밍의 악령이 죽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님이 사망한 채 발견되기 직전 밍은 외삼촌 마닛의 아들 퐁을 데리고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얼마 후 바로 발견되는데 다음날 바로 님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밍이 노이 일행 앞에 칼을 들고 나타났듯, 님을 물리적인 상을 입혀 살해했다면 라이따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살해한 방법은 악령의 초월적인 힘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바얀신이 자신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랑종인 님을 죽였다는 시선 또한 있습니다. 다만 바얀신이 목이 잘린 이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냐는 관점에서는 모호한 입장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평소에도 바얀에 대한 의구심을 지녀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평소에는 괜찮았으면서 의식 시작 전날 갑자기 그 이유를 들먹여 죽였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어집니다.


5) 밍에 빙의된 귀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일단 밍에 빙의된 악령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부터 밍에 점차 빙의되었던 악령, 나머지는 밍이 방직공장에서 받아들이게 된 온갖 악령의 집단입니다. 양쪽 모두 태국 민속신앙의 악귀들과 밀접한 영향이 있습니다.
감독이 명쾌히 답을 내놓진 않았지만 영화 초반부터 밍에 빙의된 악령은 작중 여러 사유들에 의해 불교의 상위 악령이자 태국의 민속신앙 악귀 중 매우 강력하다고 알려진 피뻡으로 보는 시선이 있으며 매우 타당합니다. 피뻡은 남을 라이따이 당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는 님이 라이따이로 사망했다는 작중 표현과 일치합니다. 피뻡은 또한 허기에 시달려 남을 물어뜯는다 알려져 있으며 이는 퐁을 굳이 물어뜯어 살해한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6) 싼티의 계획과 빨간색 차는 무슨 의미인가?

 싼티의 구마의식은 정신 나간 인물배치로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개연성에 대해 큰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왜 이런 인물배치를 하였나에 따른 이유를 영화에서 직접 밝히진 않았습니다.
다만 의식을 진행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싼티는 자동차 뒤편을 본 적이 있냐는 의미심장하고 모호한 답변을 하는데 자동차 뒤편에는 '이 차는 빨간색입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태국에서는 빨간색 자동차를 타는 것이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차를 빨간색으로 도색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들기에 차 뒤에 저런 글귀를 적어두어 귀신을 속여 행운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싼티의 말 또한 귀신을 속이겠다는 의미입니다. 님의 사망으로 단순히 악령과의 힘싸움으로는 지는 것이 불 보듯 뻔하게 되자 싼티가 나름 꾀를 낸 것입니다.


7) 싼티의 의식은 왜 잘못되었나?

 계획대로 온갖 악귀를 거두는 것에 성공한 싼티, 그러나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경우의 수가 있었는데, 이는 애초에 밍에게는 방직공장에서 받아들인 악귀들 외에도 피뻡으로 추정되는 매우 강력한 악귀가 깃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악령 중 하나만 항아리에 봉인해 두자 결국 밍의 육체는 영화 초반부터 밍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던 강력한 악귀가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밍의 몸속에서 성장할 만큼 성장한 악귀는 부적을 뚫고 바깥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밍이 방직공장에서 받아들인 악귀들을 전부 항아리에 가둬 묻는다는 싼티의 계획은 초기목적만 보면 성공 직전까지 간 것은 맞습니다. 다만 싼티가 항아리를 묻는 것까지 성공했어도 밍의 몸은 다른 악령이 지배하고 있기에 밍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 '랑종'중 한장면(무서운건 작게...)

5. 감독의 의도

 나홍진 감독은 '밍의 외숙모가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굿이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에 '곡성에서처럼 이러나저러나 실패와 참극으로 끝났을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밍의 가족들은 과거의 업보 때문에 참극을 절대 피할 수 없었으리란 것을 고려하면 님은 그나마 험한 꼴 안 당하고 편하게 간 것이기는 합니다. 일단 님은 작중에서 유일하게 가문의 원죄와 관련이 없는 인물로, 노이는 바얀 신을 거부하고 신내림을 동생에게 떠넘겼고 밍은 친오빠와 근친상간을 저지른 전적이 있고 바얀 신을 거부하고 무시했으며, 마닛은 유부남에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밝히는 부정을 저지르는 기질이 있어 빙의된 밍이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며 조롱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밍과 맥이 근친 관계임을 알고도 방조한 죄와 그에 따른 맥의 자살을 은폐한 죄까지 있습니다. 그에 비해 등장인물들 중 님만큼은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독신으로 살면서 신을 착실히 모시고 마을 사람들을 여러 가지로 도와주며 살아오다가 가까운 가족이 귀신에 씌자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선한 인물입니다. 다만 마닛의 아내 팡과 아들 퐁은 억울하게 죽은 면이 있습니다.  
영화에 묘사된 바만 살펴보자면 팡은 맥과 밍의 관계를 방조했다는 '가능성' 정도만 있습니다. 비록 구마 의식이 실패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이는 팡의 '실수'에 가깝지 죽어 마땅한 '죄'는 아닙니다.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아기에 불과한 퐁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퐁에게 굳이 죄가 있다면 '마닛의 아들인 죄'밖에 없을 것인데, 그나마도 이 참극의 근본 원인은 야싼티아 가문의 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퐁은 그야말로 어린 나이에 어이없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영화 '랑종'중 한장면

6. 제작 비화

1) 본래 나홍진은 2016년에 개봉한 <곡성>의 후속작이자 프리퀄로서 곡성의 주요 등장인물 중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의 전사를 찍을 생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한국에서 만들려고 했으나 한국에서 찍기에 부적합하다며 모두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국가 다른 문화권 캐릭터로 무당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6년 전에 태국 영화제에서 만났던 태국의 호러영화 거장 반종 피산다나쿤에게 연락해 다시 만났습니다. 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자, <곡성>을 눈여겨봤던 반종이 한국의 샤머니즘과 태국의 샤머니즘 간 공통점에 놀라면서도 마음에 들어 하며 원안을 받아들여 오랜만에 공포영화를 연출해 보겠단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고 합도 잘 맞았다고 합니다. 영화 중간중간을 보면 <곡성>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랑종>이 <곡성>에서 영감을 받았냐고 한다면 '맞다'라고 답하겠지만 일부러 화면을 곡성처럼 꾸민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홍진 감독 역시 곡성과 흡사해지기를 원치 않았다 하고, 자신과 반종 감독이 거리를 둬야 하는 작품은 <곡성>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2) 사전(事前) 제작은 샤머니즘으로 유명한 태국 북동부 이산에서 진행했습니다. 처음에 반종 감독은 태국의 민속신앙을 잘 몰라서 나홍진 감독에게 받은 시나리오를 잘 연출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이산에 2년 가까이 기거하면서 무당을 만나본 여러 전문가와 마을 내 무당 몇십 명에게 여러 가지 자문과 조언을 받아가며 영화의 콘셉트에 필요한 요소들을 준비한 끝에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3) 영화의 수위를 두고 두 감독이 언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선정적인 장면은 빼고 잔혹한 장면들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연출과 사운드로 대체하자면서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나홍진 감독 말로는 자신이 오히려 말리는 쪽이었으며 수위가 구상하기 전보다 많이 낮아져서 당당히 청불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두 감독은 불필요한 장면은 하나도 넣지 않았으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꼭 필요한 장면만 넣었고 선정적인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을 이용해 흥행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해당 장면은 CCTV로 멀리 보여주거나 어둡고 흐리게 보이도록 편집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기준으로 20대 여성이 중장년층 남성에게 쌍욕을 하며 달려드는 모습이 일반적이진 않기에 극 중 밍의 이상행동의 장치로 넣었다고 합니다.
4) 밍 역의 나릴야 쿤몽콘켓은 후반부 빙의 연기를 위해 한 달 만에 10 kg를 빼고 촬영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현재는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합니다. 후반부 빙의 연기를 위해 <곡성>, <부산행>에 참여한 박재인 안무가의 지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반종 감독은 인터뷰에서 나릴야 쿤몽콘켓을 미래가 창창한 실력파 배우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5) 반종 감독에 따르면 본작의 모든 장면들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정도로만 지시했고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배우들이 리허설 없이 직접 연출해 연기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스태프들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 나홍진 감독의 조언을 듣고 배우들과 똑같이 지시했다고 합니다.
6) 의외로 가톨릭적 요소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요소가 등장하는 퇴마물 중에서 유독 가톨릭이 하는 역할이 없는 영화입니다. 작중 님의 언니이며 밍의 어머니인 노이는 신내림을 거부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나오며,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태국의 가톨릭 문화나 신앙에 대한 비중이 특히 초반에 생각보다 큽니다. 주인공 가족들의 대화에도 기독교 소재가 많이 언급되지만 빙의된 밍이 걱정된 노이가 성당에서 기도하거나 십자가가 의미심장하게 클로즈업되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정말 스토리 내내 기독교 쪽에 아무런 역할이 없으며 심지어 영화 극초반 밍의 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온 가톨릭 사제나, 밍이 참여하는 성탄절 퍼레이드 행사준비장을 오가는 성직자 몇몇을 제외하고 그 흔한 성직자도 하나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나왔으면 영화 주제가 갑자기 엑소시스트가 되며 난잡해졌을지도 모릅니다.
7) 후속작인 <밍크>가 제작될 예정입니다.

영화 '랑종'중 바얀신

7. 마무리

 영화 <랑종>은 현대 공포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나 독특한 분위기와 강렬한 주제의식을 선보여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태국의 무속신앙과 샤머니즘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 마치 실제 사건을 목도하는 듯한 생생한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퇴마의식과 빙의 과정이 극한의 공포와 절망으로 내달리며, 관객의 심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체험을 만들어냅니다.
 <랑종>은 단순 공포 이상의 뒷맛과 주제를 남겼습니다. 단순한 점프 스케어나 놀라움보다 인물들의 무력감, 믿음과 악의 충돌,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초점을 맞춘 전개는 <곡성>을 연상시키면서도 더욱 원초적인 공포에 집중합니다. 배우들의 희생적인 연기, 특히 악에 잠식당한 밍과 신내림 무당 ‘님’의 상반된 존재감은 작품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서 느껴지는 신앙에 대한 회의와 인간의 무지, 무력감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다만 작품의 독특한 형식과 극한까지 몰아가는 불쾌감,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공포영화의 클리셰는 관객 간 호불호를 극명하게 나누게 하기도 합니다. 실제와 허구가 혼재된 파운드 푸티지, 씁쓸하면서도 신선한 악의 파노라마를 경험하고 싶다면 충분히 도전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