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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향한 아름답고도 처절한 질문, <모노노케 히메>

by 채채둥 2025.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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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노노케 히메' 포스터

1. 영화 모노노케 히메

 이 작품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을 맡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작품으로, 1997년 7월 12일 일본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과의 갈등을 철학적으로 그려낸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인간 문명의 발전과 자연 파괴 사이의 딜레마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개봉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흥행 성과를 거두었으며, 개봉 직후 역대 일본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일본에서만 약 193억 엔의 수익을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작이 매우 까다롭고 방대한 작업이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복귀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이  디즈니 산하의 미라맥스를 통해 미국에 배급되었는데, 당시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이 상영 시간을 줄이기 위해 편집을 요구하자, 지브리 측이 “No cuts”라는 문구가 적힌 일본도를 보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지브리가 작품의 완성도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모노노케 히메>는 이후 많은 감독과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환경 문제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인해 지금도 꾸준히 재조명되는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줄거리

 고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 신들과 영혼이 공존하던 시기, 북쪽 깊은 산속 엠이시 마을의 마지막 후계자 ‘아시타카’가 거대한 멧돼지 신의 저주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마을을 습격한 정체불명의 거대 멧돼지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아시타카는 그의 팔에 강력한 저주를 얻게 됩니다.

저주를 받은 아시타카

이 멧돼지는 사실 자연의 수호신이었던 나고였으며, 몸에 총탄이 박힌 채 타락하여 증오의 화신이 된 것이었습니다. 마을의 주술사는 아시타카에게 저주는 점점 그를 잠식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라 경고하며, 서쪽으로 가서 저주의 근원을 찾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라고 조언합니다.
 아시타카는 말을 타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며, 인간과 자연의 충돌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길을 가던 중 총포를 사용한 매복자들에게 습격당한 한 무리를 돕고, 이들을 통해 타타라바(제철 마을)라는 장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타타라바는 여장부이자 지도자인 에보시가 이끄는 제철 마을로, 산에서 철을 캐고 무기를 만들며 주변의 산신령과 영혼, 짐승들과 충돌 중이었습니다.

타타라바 마을의 풍경


 타타라바는 한편으로는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에보시는 창녀였던 여성들, 문둥병 환자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할 기회를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야망은 자연의 수호자들과 직접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숲을 파괴하고 철을 생산함으로써 산의 신령과 짐승들의 분노를 샀고, 특히 산의 늑대신 모로와 그녀가 키운 인간 소녀 ‘산’(모노노케 히메)의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산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소녀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고 늑대신 모로의 딸로 자처합니다. 그녀는 에보시를 죽이기 위해 타타라바를 습격하지만, 아시타카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 싸움을 막으려 합니다.

'산'과 '에보시'의 싸움

 

 그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지만, 양측 모두 깊은 상처와 증오를 안고 있어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한편, 제국의 사절이 에보시에게 접근해 시시가미(사슴신)의 머리를 가져오면 황제가 보상을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시시가미는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으로, 밤에는 다이이다라보치(거대 야광신)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에보시는 시시가미의 머리를 잘라 신의 힘을 인간의 손에 넣으려 하고, 이는 대재앙의 시작이 됩니다.
 아시타카는 시시가미의 신성함을 보고 그를 보호하려 하지만, 결국 에보시와 제국의 자객 지코(짓코)가 시시가미의 머리를 베어버립니다. 머리를 잃은 시시가미는 거대한 검은 액체처럼 변하여 주위 생명을 모두 죽이는 혼돈의 존재가 되고, 자연과 인간 모두 위협받는 상황이 됩니다. 시시가미는 머리를 되찾기 전까지 파괴를 멈추지 않습니다.

시시가미의 머리를 돌려주는 장면

 

 산과 아시타카는 함께 힘을 모아 시시가미의 머리를 되찾아 돌려주려 하며, 치열한 사투 끝에 결국 머리를 되돌려줍니다. 시시가미는 마지막 힘으로 주변을 정화시키고 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숲은 대부분 파괴되고 자연의 균형은 무너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에보시는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남으며,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아시타카는 타타라바에 남아 인간들의 삶을 돕기로 하고, 산은 인간과는 함께 살 수 없다며 숲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시타카를 인정하고, 둘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헤어집니다.

3. 제작 과정

 전작 <붉은 돼지>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며 한때 미야자키 하야오 최후의 은퇴작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작품으로 구상 기간 16년, 제작 기간 3년에 제작 예산이 200억 원에 달했으며 무려 총 14만 장의 동화가 들어간 대작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에게도 일생의 프로젝트이자 자신의 은퇴를 마무리 지을 대규모 역작이었는데 당시 인터뷰나 본인의 회고, 제작 비하인드를 보면 미야자키가 예술가이자 감독으로서 가장 칼을 갈아가며 만든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나온 결과물도 사실상 그의 개인적인 사상과 집념, 스타일, 연출 노하우와 취향, 뚝심을 모두 담아낸 작품이었고 오히려 이 작품 이후 하야오가 은퇴했다가 복귀 후에 만든 작품들은 본작이 가진 무게감이나 날카로움이 상당 부분 상쇄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을 보면 하야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본작을 통해서 이미 완성되었던 모양입니다.
 원래는 ‘아시타카 전기’라는 제목으로 정해졌던 작품이었고, 실제로 작품의 내용도 아시타카 원톱 주연의 영웅적인 대서사시입니다. 이는 이전의 지브리가 제작하던 장르와는 다른 전쟁물, 대서사시, 고어 수위를 표방했기에 개봉하기 전에도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또 하야오와 지브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외모, 전투 능력, 리더십, 인간성, 활약상에서 전방위로 완벽을 달리는 결점이 없는 완성형 주인공을 내세웠는데 이 덕에 토토로나 키키 등의 아기자기한 성장담과는 대비되는 성숙하고 고귀한 영웅의 서사시라는 본작의 특성이 더더욱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초반부 재앙신의 촉수 움직임 장면은 제작하는 데 무려 19개월이나 걸렸으며 미야자키가 모든 걸 쏟아부어 제작했을 정도로 작품 내외적으로 정말 엄청난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지브리 최후의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특별한 위치도 가진 작품이었는데, 실제로 미야자키는 <모노노케 히메> 제작 당시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이 정도 대규모의 셀 애니메이션은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작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을 제외한 제작진 대다수는 영화의 결말을 모른 채로 작업했다는 것입니다. 미야자키가 영화 제작 기간 도중에도 스토리보드를 즉흥적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마치 연재만화처럼 뒤의 내용이 매일 뽑아져 나와서 결말을 그리기 전까지 스태프들은 영화의 결말을 모른 채로 작업한 것입니다.
 그런 집념과 노력의 제작 과정을 거쳐 개봉되고 일본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는데 1997년 7월 12일에 개봉해서 1998년 7월 12일까지 무려 1년 동안이나 상영함으로써 일본 극장가 역대 최장 기간 상영작이 되었습니다. 무려 일본 내 1420만 관객 동원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일본 내에서 사회 현상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으며 티켓이 매진되면 다음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극장에서 줄을 지어 사람들이 대기하는 진풍경을 남길 정도로 흥행에서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자국 내의 이런 사회 현상 수준의 폭발적 대흥행과 호평에 관심을 가진 디즈니가 지브리에 어프로치를 했고 이는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서구권 배급, 개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공개가 된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에서도 크게 극찬을 받았고 서구권에서 뽑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목록에 영화사에 남을 걸작들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는 등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영화사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기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개봉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함께 여전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양대 최고작으로 꼽히는 명작으로 남아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 중 '산'

4. 주제가

 메라 요시카즈를 주제가 가수로 기용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1996년 미야자키는 출근길에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우연히 메라의 노래를 들었는데, 메라의 슬픈 노랫소리가 당시 제작하고 있었던 신작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주제가를 꼭 불러달라"라고 말하며 직접 섭외 요청을 했습니다. 메라는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본 적이 있어서 흔쾌히 승낙했으며, 이후 도쿄의 스튜디오 지브리를 방문해 미야자키 감독,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와 대면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가 작곡과 편곡을 맡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작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녹음 당시 메라 요시카즈는 이 노래를 누구의 시점에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메라에게 "이 노래는 아시타카의 산을 향한 마음을 노래한 노래입니다. 아시타카의 마음속의 목소리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미야자키의 조언을 들은 메라는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느긋하게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노노케 히메>가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이 주제가는 약 50만 장의 판매량을 달성했으며, 제21회 일본 아카데미상 협회 특별상 부문 주제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주제가를 부른 메라 요시카즈의 인지도도 대폭 상승했는데, 일본에서 카운터테너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봉 이후 텔레비전이나 잡지와 언론으로부터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또한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와 협연도 하는 등 유명 성악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https://youtu.be/HwfgXNdl5sY?si=bE-peCfi1n3uNXdn

모노노케 히메 - Yoshikazu Mera (출처: youtube '플리그루비')

5. 평가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과 문화 예술에 있어 하나의 획을 그은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과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변하는 일생의 역작으로 자연과 인간에 관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대서사극입니다. 개봉 당시나 지금이나 영상미, 세계관, 캐릭터, 주제 의식 등의 내적인 예술성과 함께 연출, 작화, 음악, 각본, 호흡, 사운드, 편집 등 다방면으로 격찬을 받았으며 애니메이션으로서 현재까지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함께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미야자키 하야오,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히사이시 조가 담당한 음악도 찬사를 받았는데 고대 일본의 분위기, 자연의 신비함과 장엄함, 동시에 잔혹함과 격렬함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감성과 박력 넘치는 사운드가 특징입니다.
 <모노노케 히메>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대놓고 성인층을 타깃으로 굉장히 장엄하고 냉혹하고 또 날카롭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과 작품 본연의 주제 의식의 표현에 집중한 작품으로 미야자키가 그동안 계속 탐구해 왔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지만, 묘사나 연출이 낭만주의적이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굉장히 현실적이고 냉엄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이전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이던 동화적인 구성, 전개와는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이 이토록 격찬을 받는 주된 이유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자연과 인간의 입체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과,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극을 전개하거나 마무리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극을 전개하며 '이해와 타협'이라는 현실적인 해결 방안으로 극을 마무리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도 다방면에서 해석이 가능하여 굉장히 입체적입니다. 특히 인간 사회와 야생 자연에 양립하는 캐릭터 '아시타카'의 중립적인 태도로 작품 세계의 입체성과 주제 의식에 대한 묘사를 극대화하고 완성시켰습니다. 절대 선을 지향하거나 절대 악을 지향하는 캐릭터, 세력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의 신들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가 적대적이지만, 반드시 모두를 위해 공존해야 할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숲을 수호하는 신들은 자연 그 자체를 수호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잔혹한 존재이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지만 자신들의 사회에 속한 약자들을 보살피고 사회 발전을 위해 힘쓰는 등 최대한 현실적으로 인간 세계와 야생을 묘사한 점이 돋보입니다.
 서구권에서도 인기와 인지도가 높은 작품인데, 스트리밍 서비스, 북미 IMAX 재개봉, 서양 애니메이션 팬들의 입소문 등을 통해서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편입니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와 사이먼 페그 등의 스타들이 인생 최고의 영화로 본작을 꼽기도 했습니다. 배우 마이클 B. 조던 역시 본작의 팬으로 <모노노케 히메>의 재개봉과 관련해 코멘트하기도 했을 정도로 해외 스타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유명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도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으며, 자신의 작품 <아바타>가 본작의 영향을 받았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스타워즈>의 캐릭터 아소카 타노가 본 작품의 히로인 산을 참고해서 만든 것도 유명한 사실입니다.

타타라바 마을의 모습

6. 해설

 '산'과 동물들의 말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인 ’아시타카‘는 타타라의 마을 사람들과도 가까워지나 '숲'에 대한 그의 관점은 끝끝내 마을 사람들로부터 거부받습니다. 즉, 그는 인간이지만 인간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작품 내에서 인간의 입장을 대변하는 존재는 숲을 파괴하려는 타타라의 사람들이며, 아시타카는 타타라에 도달한 '외부인'일뿐입니다.
 타타라 마을은 상당히 특이한데, 철을 여자가 만지면 부정을 탄다고 여겼던 시대에 여자가 제철을 담당하도록 하고 저주받은 존재로 생각되던 나병 환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세계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하등한 존재로 여겨졌던 여성들이 기죽지 않고 타타라 마을의 노동과 병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최고 지도자가 여성인 에보시 고젠인 것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코페미니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세계에서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 집단이 이토록 주도적으로 그려진 적은 드뭅니다. 이를 바탕으로 타타라 마을은 감독이 허락한 '인간의 공간'이라고도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상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는 없는데, 에보시 고젠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관점과 입장이 작품 속에서 분명한 비중을 두고 등장하기는 하지만 절대 선한 인물로 그려지지는 않으며, 타타라 마을 또한 인간 사회에서 복지가 향상되는 그 과정은 일정 이상의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타타라 마을이 번성하고 생존하는 과정은 다름 아닌 사철을 캐고 용광로를 켤 연료를 얻기 위하여 산을 파헤치고 숲의 나무들을 밀어버리는, 분명하게도 작품 속에서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대한 적대와 파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무를 베는 것을 증오하여 마을 단위로 촌락을 파괴해 갑니다. 마찬가지로 타타라 마을이 있는 자리는 원래 나고의 터전이어서 멧돼지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들은 에보시의 화승총 부대에 중상을 입고 축출되었습니다. 사실 나고의 맷집은 보통이 아니어서 불화살도 무용지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결국 나고는 뼈와 내장이 찢기는 고통을 받고 재앙신으로 변했으며, 에미시가 있는 곳까지 도달해 아시타카를 공격했습니다. 아시타카에 씐 저주의 원흉은 에보시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과 인간 모두 각자의 이익과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며 대립했던 것입니다.
 산은 아시타카와 비슷하게 숲의 세계에 속해있지만 이들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인간도 들개도 될 수 없는 그 애는 가엽고도 사랑스러운 내 딸이다!"라는 모로의 대사에서 잘 드러나듯, 그녀는 숲에 편입되어 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숲에서 거부받는 인물입니다.
 <모노노케 히메>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습니다. 자연은 배타적이고 잔혹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냉정한 행위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며, 에보시 고젠은 공리주의의 두 얼굴을 철저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상입니다. 다만 사철을 캐고 용광로를 돌리는 인간들의 행위는 최종적으로 숲의 세력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 파괴 행위의 결과물이 남녀가 평등하고 나환자들이 보호받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점에서 이것을 무턱대고 악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작중 배경인 무로마치 시대를 감안하면 크고 작은 전쟁을 시도 때도 없이 일삼았던 당대 사회 속에서 인간들의 공동체와 도시는 결국 더 많은 힘과 부를 축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므로 에보시 고젠의 타타라 마을은 어떠한 이상향이라기보단 단지 자신들만의 생존 방식을 관철한 것일 뿐입니다. 절대 어느 한 집단의 행동에 무조건적인 타당성을 부여하지 않고 공통된 당위성을 부여하며 복합적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기존의 지브리 작품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싸움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한 아시타카에 의해서 산은 인간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되고, 에보시도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더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극적인 해결이 아닌 현실적인 화법으로 보다 나은 세상으로의 한 걸음을 강조합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이상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작은 노력과 변화들이 쌓이며 변해가는 것으로. 산과 에보시의 변화가 바로 이러한 미야자키 감독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노노케 히메의 한장면

7. 마무리

 <모노노케 히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선, 정교하고 철학적인 생태 서사입니다.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갈등이라는 전통적인 테마를 독창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흠잡을 데 없는 작화와 정교한 세계관 구축은 미야자키 특유의 상상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탐욕, 문명화의 그림자, 자연의 신성함을 각각의 캐릭터에 투영시키며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서 복합적인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사슴신을 비롯한 신비로운 생명체들의 존재는 판타지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인 울림을 주며, 아시타카와 산의 갈등과 유대는 그 중심에서 영화 전체의 감정선을 이끌고 갑니다. 음악 또한 히사이시 조의 웅장하고 서정적인 테마로 이야기의 비극성과 아름다움을 한층 끌어올립니다. 단지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닌, 인간 존재와 자연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적 성취로서, 영화 마니아라면 반드시 곱씹어야 할 작품입니다.

 

지금 현재 재개봉되어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니 그 가치를 직접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