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 여곡성(1986)
이 작품은 이혁수 감독이 연출한 대한민국 전통 호러 영화로, 1986년 개봉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가문인 집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습니다.
주요 배우로는 김기종(이경진), 석인수(신씨 부인), 김윤희(옥분), 김한상(명규), 이계인(떡쇠), 김소연(월아)이 출연했습니다. 1980년대 특유의 아날로그 악령 효과와 기괴한 비주얼 연출로 화제를 모았으며, 특히 국수인 줄 알고 지렁이를 먹는 장면, 닭 피를 마시는 장면 등은 당시 관객들에게 강렬한 공포감을 선사했습니다. 전통 귀신 설화와 한(恨)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점이 대한민국 고전 공포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유입니다.
개봉 당시에는 사회적 금기와 공포심을 자극하며 큰 흥행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켰고, 이후 2018년 동명 리메이크작이 나올 만큼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배우들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 음산하고 기이한 연출, 그리고 인간의 원한이 불러온 저주의 서사로 한국 호러 장르의 결정적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 줄거리
조선시대,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양반가 ‘이경진‘(김기종) 집안에서는 혼인 첫날밤마다 생기는 기괴한 죽음들로 가문 전체가 공포에 휩싸입니다. 이미 두 아들이 첫날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임을 당했고, 시어머니 ‘신씨‘(석인수)는 세 번째 며느리로 가진 것 없는 고아 ‘옥분‘(김윤희)을 데려옵니다.

신씨는 옥분을 이용해 집안의 대를 잇고자 하면서, 아들 ‘명규‘(김한상)와의 혼인식을 계획합니다. 첫날밤, 명규는 어머니의 만류를 물리치고 직접 혼례방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원혼 ‘월아‘(김소연, 생전 관기 출신)가 나타나 명규를 죽이고, 옥분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사실 옥분의 어깨에는 부적으로 작용하는 특이한 흉터가 있어 귀신에게 해를 입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옥분은 남편을 잃었지만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안 신씨는 옥분을 집안에 더 머무르게 하기로 합니다. 신씨는 한양에서 실력 좋은 무당 해천비를 불러들이고, 해천비는 집안에 들끓는 원귀의 정체를 알아내기 시작합니다. 옥분은 명규의 혼령에 이끌려 광으로 가고, 그곳에서 세 아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이경진은 실성한 채 광에 갇혀있었습니다. 과거를 알게 된 옥분은 옛날 이 집안의 주인 이경진이 월아(김소연)라는 기생과 정을 통했다는 사실, 그리고 명문가 출신인 신씨와 결혼하기 위해 월아와 그 뱃속 아이까지 제거했다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월아는 억울한 죽음 이후 원한을 품고 원귀로 변해 집안 남자들을 차례로 해쳤던 것입니다. 급기야 신씨도 살해되어, 월아가 신씨의 모습으로 집안에 들어와 며느리와 하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옥분은 결국 월아의 묘를 찾아 진짜 신씨의 시체를 발견하고, 이 사실을 가주 이경진에게 알리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월아는 옥분마저 죽이려 하지만, 옥분이 스스로 천민의 비애와 애환을 이야기하자 월아의 복수심이 누그러집니다. 마지막 순간, 무당 해천비와 함께 악귀 월아와 맞서 싸우고, 옥분의 어깨에 난 부적 같은 흉터 덕분에 월아의 저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집안을 덮친 저주는 이로써 풀리게 되고, 옥분은 대를 잇게 된 채 끝이 납니다.
3. 평가
일반 납량특집 공포영화와는 많이 차별되는 장면이 많았는데 21세기 시점에서 봤을 땐 꽤나 조잡하긴 하지만 특수효과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이경진이 신씨에게 받은 밥상에서 먹고 있던 국수가 갑자기 지렁이로 보이는 역대급 비주얼로 적잖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진짜 지렁이를 먹으며 연기했다고… 카더라가 아니라 감독이 1990년대 후반 유니텔 호러영화 동호회 모임에 초대받아 나와 여러 촬영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당시에 실제로 확인해 준 실제 연기입니다! 이경진을 맡은 배우 김기종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지렁이 국수를 입에 물고 쩝쩝거렸는데 만족할 촬영결과가 나와 감독이 잘했다고 하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지며 우웩 뱉어버렸다고... 입가심하라고 음료수 가져오고 한참을 있다 국수를 한동안 못 먹겠다고 배우가 울먹이는 반응을 보여 잊을 수 없다고 웃으며 회고했습니다….
지렁이 국수 사진은 이정도만 보여드립니다...

사실 7~80년대 열악한 한국 제작환경에서 공포영화는 촬영 이야기가 더 공포스러운 게 많습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같은 에로틱 영화감독으로도 알려졌지만 이전에는 호러를 주로 감독하던 김인수가 감독한 <원한의 공동묘지>(1983)를 보면 촬영을 위해 실제 고양이들을 내던지거나 몽둥이로 내리쳐 죽이는 엄청난 동물학대와 살육을 실제로 벌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인수 감독의 같은 작품인 <미녀 공동묘지>에서도 뱀을 수백 마리 등장시켜 칼로 뱀을 잘라 죽이거나 하는 장면들도 나옵니다. 사실 미국 할리우드나 유럽에서도 70년대까지는 가끔 동물이 죽는 장면을 그대로 찍기도 했습니다. 서양이나 한국이나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입니다.
그밖에 월아가 둔갑한 신씨의 비주얼도 만만치 않는 반응을 일으켰는데 당시에는 보기 드문 흡혈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쇼킹 그 자체였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고전 공포영화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을 많이 삽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노약자 및 심약자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려주세요


4. 여담
한국 고전영화 치고는 구해서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인데, 비디오판 영상이 인터넷상을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영상 자체는 화질이 썩 좋지 않은 데다가 중간에 잘려나간 장면도 있습니다. 원판에서는 실성하여 광에 갇힌 시아버지가 주인공인 셋째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이를 덮치려다가, 그 가슴에 새겨진 卍자의 힘으로 제정신을 되찾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터넷상에 퍼져있는 판본에서는 이 부분이 뭉텅 잘려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째서 첫 장면에서는 나오지도 않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등장하게 되는지 알 길이 없어졌습니다.
한국의 고전 공포영화 중에서는 제법 유명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판권이 제법 꼬여 있어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아직 필름 복원을 하지 않은 듯합니다. 필름 자체는 영상자료원에 네거티브까지 남아있어서 해외 블루레이 회사인 몬도 마카브로에서 이 작품을 출시하기로 계획했는데 <여곡성>의 원 저작권자(제작사인 국제영화흥업 대표인 황영실 사장이 87년에 사망했기 때문)가 사망하는 바람에 저작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상황이 복잡해지는 바람에 모든 게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의 유명세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복원되거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VOD로 서비스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포 장면 외에도 극 중 둘째 며느리로 출연 한 배우 홍명진의 외모가 현시점으로 봐도 서구적이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굉장한 미인이라 지금까지도 화자 됩니다. 하지만 홍명진은 <여곡성>을 포함해서, 1980년대에 딱 다섯 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 그 뒤로는 배우를 그만둔 건지 아무 자료도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전설의 고향>으로 방영한 에피소드 ‘귀곡성‘(鬼哭聲)도 있는데, 제목이 비슷해서 혼동하거나 짝퉁영화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이쪽도 상당한 수작으로 제목이 우연히 비슷할 뿐이며 본작과의 관련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위 영화 덕에 무한도전 귀곡성 특집 맨 마지막 컷에서 <여곡성>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귀신 분장들 중 상당수는 이 영화의 오마주가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는 호러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귀신 연기자들마저 깜짝깜짝 놀라는 게 개그(...)
2018년에 리메이크판이 나왔지만 흥행도 작품성도 거하게 폭망 하기도 했습니다…
5. 마무리
본 작은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미덕과 한계를 동시에 응축한 작품입니다. 혼례와 대가 끊기는 집안이라는 조선시대 소재, 그리고 ‘원한’을 축으로 펼쳐지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플롯은 이후 수많은 한국 호러작이 반복하게 될 공식의 출발점이라 할 만합니다. 특히 김기종, 석인수, 김윤희, 김한상 등 배우들의 과감하고도 투박한 연기는 CG의 도움 없이 오로지 육체와 분장, 표현력만으로 악귀와 공포, 광기와 절망의 분위기를 살려냈습니다.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지렁이 국수’ 장면을 비롯해, 직접 촬영된 혐오 신들이 전해주는 충격은 당대 기준을 넘어 지금까지도 감흥이 남습니다. 촌스럽고 다소 조악해 보일 수 있는 분장과 특수효과는 오히려 매니악한 미덕이 되어, 디지털 호러가 잃어버린 ‘직접성’의 매력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관객의 눈으로 보면 익숙한 예측 가능성, 장르적 공식의 답습, 한계가 명확한 서사와 공포 연출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곡성>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한국적 한(恨)과 저주의 감각을 극대화하여 고유의 괴기성과 미스터리, 여성 인물의 주체성을 심도 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명작으로 회자됩니다. 오리지널 분장, 미장센, 침묵이 주는 공포 등 아날로그적 스타일의 소중함을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는 필견의 영화이자, 심야에 조용히 감상하면 오래도록 잔상을 남기는 명품 고전 호러임에 틀림없는 작품입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는 어른 피터팬의 모험, <후크> (147) | 2025.08.27 |
|---|---|
| 어린 소년과 외계인의 순수하고 감동적인 우정 ,<E.T.> (157) | 2025.08.26 |
| 욕망의 해방을 그린 만화적 판타지, <마스크> (110) | 2025.08.24 |
| 무대 위의 영광, 현실 속의 파멸, <패왕별희> (109) | 2025.08.23 |
| 기억 속 사랑이 눈처럼 고요히 스며드는 서정시, <러브레터> (137) | 2025.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