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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대 위의 영광, 현실 속의 파멸, <패왕별희>

by 채채둥 202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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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왕별희'의 2020년 재개봉 포스터

1. 영화 패왕별희

 이 영화는 1993년 중국의 천카이거(첸 카이거)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경극을 소재로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두 경극 배우의 성장, 우정, 사랑, 갈등을 섬세하고 비극적으로 그려낸 명작입니다.
 주요 배우로는 장국영(두지/청데이 역), 장풍의(시투/단샬로 역), 공리(주샨 역) 등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1993년 12월 24일에 개봉되어 서울에서만 24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제4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아시아 영화사의 획을 그었습니다.
 홍콩의 작가인 이벽화(李碧華)의 소설 <사랑이여 안녕>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원작자가 각본에도 참여했습니다. 경극 ‘패왕별희’의 항우와 우희의 비극이 있으며, 영화 또한 혼란스러운 시대 속 인물들의 사랑과 자기희생,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우아하게 풀어나갑니다. 예술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사유, 아름다운 영상미와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아시아 영화입니다.

2. 줄거리

 영화는 1920년대 중국 북경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어린 ‘두지‘(장국영)는 매춘부였던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경극학교에 맡겨집니다.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과 가혹한 훈육 속에서 살아 남으며, 든든한 친구인 ‘시투’(장풍의)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혹독한 학교 생활을 버티며 경극 배우로 성장하고, 두지는 무대에서 여성 역할을, 시투는 남성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들은 ‘패왕별희’ 경극에서 각각 우희와 항우역을 맡아 무대 위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줍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시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극 배우 우희(장국영), 항우(장풍의)가 되고, 시투는 홍등가의 아름다운 창녀 ‘주샨‘(공리)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합니다. 두지는 시투에 대한 짝사랑과 질투, 예술적 집착 속에서 점차 아편에 의존하게 되고, 인생은 앞날을 알 수 없는 혼돈으로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던 중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 점령기 속에서 이들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시투가 일본군에게 붙잡히자, 주샨이 두지에게 시투를 구해 달라 부탁하고, 두지는 일본군 장교 앞에서 공연을 하여 시투를 풀려나게 하지만, 이 때문에 시투와의 사이는 더욱 멀어집니다. 해방 후에는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죄로 두지가 재판받는 등 고난이 이어집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이후 국공내전을 거치며 권력의 변화 속 두 사람은 경극배우로서 명예도, 삶도 위태로워집니다. 두지와 시투, 주샨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지만,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적 광풍이 이들을 다시 시험대에 올립니다. 인민재판장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비난하고, 시투는 두지가 동성애자임을, 두지는 주샨의 과거를 폭로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적 없다는 시투의 증언은 결국 주샨의 자살을 불러오고, 세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됩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1976년, 대혁명 이후 텅 빈 경극장, 남은 두지와 시투는 마지막으로 ‘패왕별희’ 무대를 함께 하게 됩니다. 현실과 경극의 경계가 허물어진 무대 위에서, 두지는 항우의 연인 우희로서 시투와 마지막 연기를 펼치고, 결국 자신 역시 온몸을 바쳐 공연을 완성한 뒤, 우희처럼 자살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두 배우의 운명은 무대 위 비극처럼 절절하게 막을 내립니다. 

3. 확장판, 감독판, 재개봉

1) 중국 상영판에서는 두지가 자살하지 않고, 시투와 공연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페이드 아웃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2) 한국에서는 자주 재개봉을 했습니다. 기존 156분 분량에서 15분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5월 1일 재개봉되었습니다. 원래 장국영 사망 17주기 기념으로 4월 1일 개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1달 미뤄진 것이었습니다. 이후 2023년에 정확히 사망 20주기인 4월 1일에 맞춰서 재개봉 했습니다. 또한 올해 2025년 3월 26일에도 재개봉 되어 여전헤 사랑받는 작품임을 반증했습니다.
3) 감독판(혹은 확장판)이 존재합니다. 한국에서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봉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상영본보다 15분 정도 길고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화질도 보강된 완전판입니다.
감독판에 추가된 장면은 상영에서 지나치게 늘어졌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동성애와 같이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장면 등이라고 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두지와 시투의 어린 시절 일부, 장 내관의 두지의 강간 장면, 원대인과 두지의 동성애 장면(베드신), 두지의 아편흡입, 홍위병의 인민재판 일부 등이라고 합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4. 평가

 작품성 면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걸작입니다. 첸카이거 감독은 경극이라는 중국의 전통예술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 사랑, 삶의 비극을 격동의 역사와 연결시키며,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영화는 경극 ‘패왕별희’의 내용과 삶을 교차시켜 주인공들의 내면적 혼란과 절망을 뛰어난 영상미와 연기로 압축합니다. 장국영(두지)의 성적·정체성·예술적 고뇌, 공리(쥬샨)의 불안과 아픔, 장풍의(시투)의 고집과 애증은 극을 강렬하게 밀어갑니다.
 대사는 반복적으로 예술과 삶의 동일함, 내면적 고통을 표출하고, 미장센과 색채, 경극 음악의 활용은 작품에 예술적 깊이를 더합니다. 시대적 격변(문화대혁명, 일제강점 등)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운명을 통해 중국 역사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점도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와 감정의 복잡함을 우아하고 치열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영화적 완성도 또한 매우 높습니다.
 제46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배우 장국영의 연기는 영화사적으로도 오래 회자될 명연기로 평가받습니다. 예술성과 역사성, 심리적 깊이, 연출과 연기 등 모든 측면에서 영화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손꼽히며,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5. 제작 비화

1) 1988년, 천카이거 감독이 영화 <혜자왕>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칸 영화제에서 영화 제작자 서풍이 주도적으로 천카이거와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서풍은 이벽화의 소설 '사랑이여 안녕'을 들고 그를 찾아와 '이걸 영화로 만들려면 반드시 천카이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서풍은 영화판 패왕별희의 제작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천카이거는 다른 영화(현위의 인생) 작업을 막 시작한 상태였는데, 서풍은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그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천카이거는 서풍의 남다른 아량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 원래 두지의 배역으로 후보에 오른 사람은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 역을 맡은 존 론이었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천카이거는 〈마지막 황제〉에서 황실 근위대 대장으로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합니다. 존 론도 미국으로 가기 전에 홍콩에서 경극학교를 다녔고, 그 시점에서 서방 영화계에서는 〈마지막 황제〉 덕에 장국영보다는 존 론이 더 유명했기 때문에 배역을 맡아도 그다지 무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장국영이 워낙에 동안이었던지라 묻히는 감이 있는데, 존 론과 불과 4살 차이입니다.. 하지만 천카이거 감독은 아무래도 장국영이 두지와 더 맞다고 판단, 원작을 쓴 이벽화와 접촉해서 장국영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3) 배우 장국영은 중성적인 두지의 모습과 우희의 모습, 그리고 동성애 성향을 완벽히 소화해냈습니다. 그가 훗날 (비공식적으로) 양성애자임이 세상에 알려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장국영이 캐스팅되었을 때, 천카이거는 홍콩 배우가 두지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합니다. 이때 장국영은 자신이 두지에 적격이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엄청난 열연을 펼쳤습니다. 두지가 원세경에게서 검을 받아 인력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장국영의 연기를 보고 제작진들이 모두 소름이 돋았다고 합니다. 번진 입가가 피를 흘리는 것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4)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해외 언론들도 장국영의 연기에 감탄했지만, 이미 아시아에서 대스타였던 장국영에 대해 '신인인데도 연기력이 너무 훌륭하다'며 이런 배우를 어디서 발굴했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만큼 아시아 영화가 서구권에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인터뷰하는 대상에 대한 사전 조사를 전혀 안 해서 나온 무례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패왕별희의 성공으로 장국영은 서구권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지만, 칸 영화제에서 황당한 질문을 받았던 경험 때문에 '내가 서구 영화계로 진출한다면 신인 단계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5)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1993년은 아직도 중국이 경직되었을 때라서, 이 영화의 중국 내 상영은 엄격히 제한을 받았습니다. 중국 당국이 문제삼은 표면적인 이유는 동성애와 자살 미화,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대혁명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제작된 지 오래되기도 했고, 국제영화계에서 상을 휩쓸는 등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며, 그동안 수준이 저평가되었던 중국 영화의 실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칭송되어, 아무 제한없이 TV에서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또 중국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최고점을 받는 걸작으로 등극해 있으며, 중국 대중의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감독 천카이거 역시 중국의 거장 대접을 받으며 각종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 '패왕별희' 스틸컷

6. 마무리

 천카이거의 <패왕별희>는 단순히 한 편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중국의 근현대사를 무대로 예술과 인간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대서사시 같은 영화였습니다. 경극의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진 집착, 사랑, 정체성의 혼란이 겹겹이 쌓여 관객을 압도합니다. 특히 장국영이 연기한 두지는 예술에 자신을 바친 한 인간이 시대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부서져 가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완벽한 ‘우희’지만, 무대 밖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정의하지 못하는 비극적 존재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연출의 균형감각입니다. 천카이거는 중국의 혼란스러운 정치사를 배경으로 두 인물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병렬적으로 엮어내면서도, 결코 역사적 맥락에 인물들이 매몰되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그 시대의 소용돌이가 인물의 내면을 증폭시키고, 예술을 통한 정체성의 탐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었습니다. 화면 구성 역시 인상적입니다. 경극의 무대가 지닌 색채와 형식미는 철저히 영화적 미장센으로 전환되어, 장엄하고 때론 잔혹한 서사의 배경으로 기능합니다.
 무엇보다 극적인 매력은 “예술과 현실의 모순”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입니다. 예술은 무대 위에서만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무대 밖에서는 권력, 시대, 인간관계 속에서 늘 흔들리고 타락합니다. 이 대비가 영화의 정수를 이루며, 관객에게 단순한 감정이 아닌 압도적인 체험을 제공합니다. 본 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라는 매체가 예술, 역사, 인간의 삶을 어떻게 하나의 비극적 합주로 엮어낼 수 있는지 극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