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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기 어린 망상이 빚어낸 가장 서늘하고도 정교한 인류학적 농담, <부고니아>

by 채채둥 202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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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 포스터

1. 영화 부고니아

 이 작품은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블랙 코미디 스릴러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2025년 하반기에 개봉하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음모론에 빠진 두 청년이 유명 제약회사의 CEO를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이라고 믿고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며, 원작의 기발한 설정을 현대적이고 냉소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감독의 전작 <가여운 것들>과 <친절한 타인들>에서 호흡을 맞췄던 엠마 스톤이 납치된 CEO 미셸 역을, 제시 플레먼스가 주동자 테디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 대결을 펼쳤습니다. 제82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특히 원작의 강 사장 캐릭터를 여성 CEO로 바꾸고 주인공의 동기인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을 서사에 녹여내는 등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점이 돋보입니다.
 <미드소마>의 아리 애스터 감독이 원작의 열렬한 팬으로서 제작에 참여해 리메이크를 적극 추진했으며, 제목인 ‘부고니아‘는 죽은 소의 사체에서 꿀벌이 태어난다는 고대 그리스의 믿음에서 유래하여 영화의 주제 의식을 암시합니다.

2. 줄거리

 영화는 거대 바이오 기업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테디‘(제시 플레먼스)가 벌의 집단 실종과 지구 환경의 급격한 붕괴를 외계인의 지구 침공 계획으로 믿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CEO ‘미셸‘(엠마 스톤)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 확신하고, 회사가 벌과 관련된 기묘한 생물 실험을 진행하는 정황, 기후 이상, 뉴스 속 각종 재난을 모두 “외계인의 인류 절멸 프로젝트” 증거로 조립합니다.

지구를 구하려는 테디

 
집에서 함께 사는 사촌 동생 ‘도니‘(에이든 델비스)에게도 이런 음모론을 끊임없이 주입하면서, 현실의 실패감과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구를 구하는 특별한 사명”이라는 망상으로 덮어버립니다. 결국 테디는 도니를 끌어들여 미셸을 납치해 심문하고, 외계인의 침공을 막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미셸을 납치하는 테디와 도니

 
테디와 도니는 회사 인근에서 미셸을 급습해 차 트렁크에 실어 집 지하실로 끌고 와 결박합니다. 납치를 당한 미셸은 처음에는 평범한 범죄라고 생각하지만, 곧 테디가 단순한 납치범이 아니라 외계인과 인류 멸망을 진지하게 믿는 광적인 음모론 자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테디는 그동안 자신이 모아 온 자료와 회사 내부 정보를 늘어놓으며, 미셸이 벌과 인간을 이용해 지구 생태계를 재설계하는 외계 실험의 현장 책임자라고 몰아붙입니다. 그는 미셸에게 “우주 본부”와 교신해 실험을 중단시키라고 강요하고, 회사에서 본 보안 시스템과 실험 설비를 모두 외계 기술의 위장물로 해석해 버립니다. 도니는 지하실에서 이 광기 어린 심문을 함께 지켜보며 테디의 논리에 동조하려 하지만, 점점 상황이 현실 범죄와 살인의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미셸을 감금하고 심문하는 테디와 도니

 
시간이 흐르며 지하실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미셸은 살아남기 위해 테디의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보다는, 말을 아끼고 질문을 던지며 그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늦추려 합니다. 반면 도니는 감금과 폭력, 그리고 테디가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만 반복하는 상황 속에서 정신적으로 붕괴해 갑니다. 그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어릴 때부터 느껴온 열등감과 무력감을 동시에 견디지 못해, 결국 지하실에서 자기 몸에 스스로 치명적인 상처를 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도니의 죽음은 테디에게 현실로 돌아올 계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외계인이 방해 공작으로 사촌을 희생시켰다”는 식의 더 심각한 망상을 낳고, 그는 미셸을 향한 의심과 폭력을 한층 더 노골적으로 키웁니다.
 한편, 테디의 어머니 ‘샌디‘(앨리샤 실버스톤)는 병원에서 위중한 상태로 누워 있고, 테디는 어머니의 병마저 외계인이 인간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간주합니다. 그는 어머니를 살리고 인류를 구하려면 반드시 미셸에게서 “외계 치료법”을 빼내야 한다고 믿으며, 미셸에게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잔혹한 협박을 계속합니다.

차분하게 탈출을 노리는 미셸

 
 미셸은 테디의 폭주 속에서도 탈출 가능성을 계산하며 대화를 이어 갑니다. 그녀는 회사에서 다루던 약품 이야기를 활용해 암시적인 표현으로 “특별한 약”과 “다른 방식의 치료” 같은 이야기를 흘리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고 테디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테디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병원으로 찾아가 자동차 부동액을 트렁크에 싣고 가서 어머니 샌디의 링거에 섞어 주입합니다. 그는 이를 “외계 기술을 모방한 치료법”이라고 믿으며 절박하게 어머니를 바라보지만, 실상은 어머니를 더욱 치명적인 위험으로 몰아넣는 독극물 투여 행위일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테디의 현실 감각은 거의 완전히 붕괴하고, 그는 죄책감과 공포를 모두 외계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끝까지 싸우는 것뿐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후 테디는 월식이 있는 밤을 “외계 본부와 지구가 가장 강하게 연결되는 시점”으로 여기고, 미셸을 다시 회사로 데려가기로 합니다. 그는 미셸을 차에 태워 회사로 이동합니다.

미셸을 다시 회사로 데려온 테디

 
미셸은 테디를 진정시키기 위해 회사 사무실 한쪽에 있는 평범한 옷장을 가리키며, 그 안이 사실 외계 함선과 연결된 “순간 이동 장치”고, 계산기에 입력하는 특정 수식이 문을 여는 암호라고 설명하는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테디는 이미 분별력을 잃은 상태라 이 기묘한 설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옷장과 계산기를 통해 마침내 외계 본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 이후 내용은 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무실의 옷장 문을 열자마자 폭발 발생

 
경찰과 구조대가 회사에 도착하면서 테디는 제압되고, 미셸은 심하게 다친 상태로 구조되어 구급차에 실립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구급대원을 밀치고 구급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회사 건물로 돌아갑니다. 미셸은 텅 비어 가는 사무실을 지나 테디가 집착하던 계산기를 챙겨 들고, 그가 “문”이라고 믿던 옷장 앞에 섭니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옷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계산기에 수식을 입력한 뒤 뭔가를 확신한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곧 내부에서 강한 빛과 함께 전자음 같은 소리가 겹쳐 들리는 장면이 암시적으로 제시되고, 화면은 외부에서 닫힌 옷장 문을 비추며 이 공간이 실제로 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아니면 관객의 상상과 해석에 맡겨지는 장치인지 모호한 경계선을 만듭니다.

실은 진짜 외계인이었던 미셸

 
 미셸은 진짜로 외계인이었으며, 심지어 황제 본인이었습니다. 함선에서 동족의 부축을 받으며 복귀한 미셸은 머리카락이 잘려 소통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테디의 예측이 맞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실험 경과를 듣고 인류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실험 중단과 인류 말살을 명령합니다. 그녀가 평평한 지구 모형을 덮은 막을 바늘로 찔러 터뜨리자, 인류는 멸망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전 세계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만 쓰러져 있고, 그 외의 생명체는 멀쩡히 활동하는 모습이 비칩니다. 끝으로 꽃 위에 앉은 꿀벌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납니다.

3. 평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는 원작인 '지구를 지켜라!'의 기괴한 정서를 현대적인 냉소주의와 결합하여 재구축한 포스트모던 스릴러의 정점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가 범람하는 21세기의 불신을 상징적인 미장센으로 치환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테디(제시 플레먼스)라는 인물은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파편화된 정보 속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구축하려는 현대인의 뒤틀린 갈망을 대변합니다. 란티모스 특유의 건조하고 무미건조한 대사 톤은 테디의 광기 어린 폭력과 미셸(엠마 스톤)의 처절한 생존 본능 사이에서 발생하는 기묘한 부조리극을 극대화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듭니다. 특히 엠마 스톤은 피해자의 취약함과 영악한 생존 전략을 오가는 입체적인 연기를 통해 영화의 서스펜스를 한층 깊게 만들었으며, 이는 제시 플레먼스의 둔탁하면서도 압도적인 압박감과 완벽한 대조를 이룹니다.
 영화의 기술적 측면과 주제 의식의 결합 또한 매우 정교합니다. 광각 렌즈와 왜곡된 프레임을 활용해 지하실이라는 폐쇄 공포증적 공간을 시각화한 촬영 기법은 인물들의 고립된 정신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 된 지점은 단연 결말의 초현실적 반전입니다. 이는 원작의 결말을 계승하면서도, 란티모스 특유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투영하여 '진실이 무엇인가'보다 '무엇을 믿기로 선택했는가'가 한 개인과 세계를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를 잔혹하게 증명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인류 문명의 종말을 목도하는 테디의 웃음을 통해, 객관적 진실이 소멸하고 주관적 확신만이 남은 이 시대의 가장 공포스러운 풍속화를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4. 원작과의 차이점

*원작 강만식: 미셸
*원작 병구: 테디 
*원작 순이: 도니

원작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 강만식, 순이

1) 원작의 강만식과 순이에 해당하는 인물의 성별이 바뀌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본작에서는 테디와 도니가 성욕 때문에 임무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라며 스스로 화학적 거세를 합니다. 강만식은 용변을 볼 때마다 구속된 채로 눠야 해서 애처롭게 순이 씨를 불렀으나, 미셸은 최소한의 식사와 용변 때만 구속을 풀어주는데 이것 역시 성욕 방지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설정 때문에 붙잡힌 미셸이 테디에게 원하는 요구 조건이 무엇인가를 물어볼 때 금전적 이득 외에도 섹스를 원하는 것인지도 물어봅니다.
2) 원작의 강만식은 유제화학 사장이지만 본작의 미셸은 제약회사 CEO입니다. 원작에서는 병구의 어머니가 강만식의 화학공장에서 일하다가 중독되어 식물인간이 되지만, 본작에서는 미셸의 제약회사에서 발매한 실험 단계의 오피오이드 중독 치료약 때문에 혼수상태가 됩니다.
3) 테디와 사촌지간인 도니는 원작의 순이와는 달리 발달장애 증세를 보입니다. 도니 역의 에이단 델비스는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입니다.
4) 원작의 병구와 순이는 사랑하는 연인사이지만 테디와 도니는 사촌관계입니다. 영화 개봉 전에는 동성애자로 추측되기도 했으나 동성애적 사랑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사랑에 가깝습니다.
5) 원작에서의 병구는 시대가 아직 인터넷이 그렇게까지 발달했던 시절이 아니기에 외계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의 망상이 가미되기는 했어도 혼자서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다진 반면에, 이 작품에서의 테디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배제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기에 그러한 외부의 음모론을 가미한다는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6) 원작의 유명한 물파스 고문은 항히스타민제 크림을 발라 신경계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순화되었습니다.
7) 원작에 비해 수사의 스케일이 굉장히 작아졌습니다. 원작에서는 경찰들의 수사 과정, 그 수사에 참여하는 수많은 경찰을 보여주지만 리메이크에선 납치에 대한 뉴스, 그리고 이를 위해 잠시 순찰 나온 케이시 보안관보를 보여주는 것이 끝입니다.
8) 원작의 만식은 외계인들의 왕자였지만 본작에서의 미셸은 외계인들의 우주 황제입니다.
9) 병구는 전기 고문을 할 때 '우린 100 볼트도 쉽게 죽어버리지만 너희들은 달라, 200 볼트에서도 한 시간은 견디지'라 이야기하며 순이에게 최대 전압으로 올릴 것을 지시하는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 부분에서 관객이 '고문당하는 CEO는 진짜 외계인'이라는 걸 도입부부터 빠르게 알아차릴 것을 염려했는지, 테디가 전압 설명 없이 직접 전기의자로 고문하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다만 원작에서는 병구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전기고문이 시작되자 다른 장면으로 장면 전환되는 등 전기 고문관련된 부분을 연출을 통해 불확실하게 묘사합니다.
10) 강만식은 소변을 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무려 5분이 조금 넘게 소변을 누자 감시 중이던 순이가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이전에 병구를 도발했다 모질게 전기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끙끙거리던 강만식은 울먹이며 '멈추지 않는다, 몸이 이상해진 것 같다' 흐느낍니다. 반면 미셸은 어쩐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혀 배뇨와 배설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 도니가 걱정하자 테디는 저것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동정심과 죄책감을 유발하려는 것이니 속지 말라 당부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가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암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원작의 순이에 해당하는 도니는 순이와 달리 테디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해 전기의자를 끄려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낀 행동을 하면서 애써 미셸을 외면하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결국 죄책감과 불안을 못 이기고 미셀의 눈앞에서 자살합니다. 순이 역시 병구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 듯이 보였으나 애써 외면하였고, 결국 강만식이 병구의 순이를 향한 감정에 대해 이간질하여 떠나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후반에 병구를 돕기 위해 돌아왔다가 강만식에게 살해당합니다. 또한 병구는 순이를 소중히 여겼기에 납치와 고문을 보며 힘들어하는 순이를 한번 떠나보냈으나, 테디는 도니를 떠나보내지 못했고, 도니는 테디와 미셸 중 어느 쪽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채 소외되고 맙니다.
12) 지하실에서 병구의 일기를 발견하며 병구가 과거 겪은 모든 비극을 회상으로 보여주고 강만식이 오열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원작과 달리 리메이크는 테디의 과거는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표본들과 일지는 아주 잠깐 지나가듯이 나오며 미셸 회사의 만행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사태에 대해 미셸이 보여주기식 사과만 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는 것으로 연출됩니다.
13) 원작에서는 강만식이 외계인 왕자와 접선한다고 거짓말하고는 연구소로 끌어들여 병구와 순이를 죽이려 하지만 본작에서는 미셸이 테디를 정말로 순간 이동 장치로 안내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미셸이 테디를 일부러 죽인 것이 맞는지 확실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14) 지구평평설을 차용해 지구가 평평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15) 마지막에 지구 자체를 레이저포와 비슷한 물건으로 폭발에 가깝게 파괴한 원작과 달리 본작에서는 평평한 지구 모형에서 상단을 덮어 싼 공기방울로 보이는 것을 날카로운 기구로 터트려 인류만을 죽입니다.
16) 원작의 병구는 답도 없는 무직자에 뼈저린 흑수저 신세이지만, 테디의 경우는 엄연히 정규직에 해당하는 제약회사의 생산직 노동자이며 이와 별개로 자영업으로 양봉업까지 영위합니다. 테디가 비록 추레한 옷차람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인물이란 점은 여러 장면에 의해 묘사되는데, 변두리이긴 하지만 자신의 집 겸 아지트를 가지고 있는 것, 마트에서 넉넉하게 장을 볼 수 있고 식사를 사치스럽진 않지만 든든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빈사 상태인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 외계인 탐지 및 접선 프로젝트를 자신만의 재력으로 기획하고 이행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17) 원작의 외계인 묘사는 cg를 기반으로 비현실성이 강조된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강하나, 본작의 경우는 외계인들의 얼굴은 사람과 그대로이고 몸은 마치 코스튬을 입은 것 같이 묘사되어 연극적 요소가 짙습니다.

영화 중 미셸

5. 제작비화

1) 제목인 "부고니아"는 꿀벌을 만들어내는 의식의 이름입니다. 정육면체로 된 작은 집을 만들어 그 안에 소의 시체를 집어넣고 기다리면 꿀벌이 만들어진다는 의식입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은 꿀벌이 소의 시체에서 자연발생한다고 믿었습니다. 
2) 제작을 맡은 아리 애스터와 감독을 맡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두 사람 다 정신 건강에 안 좋은... 영화 전문 감독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영화 팬들에게는 개봉 전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는 조합으로 기대를 받았습니다. 각본가인 윌 트레이시도 정신에 악영향을 끼치기 좋은 드라마 <석세션>, 영화 <더 메뉴>의 각본가로 유명합니다.
3) 엠마 스톤은 촬영을 하면서 본작이 다루는 주제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총격 피살 사건'이 일어나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범인이 기업으로 인한 사회문제의 책임을 묻기 위해 CEO를 범죄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해당 사건과 본작의 스토리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본작의 테디는 미셸의 회사에 대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원한을 품고 있었고 이를 음모론과 접목시켰다는 점입니다.
4) 이 영화가 공개되며 해외 씨네필들 사이에서 원작인 <지구를 지켜라!>를 찾아보려는 반응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잘 알려진 영화가 아니다 보니 DVD나 OTT를 찾아보기 힘들며, OTT도 국가마다 사정이 달라 같은 플랫폼이어도 특정 국가에만 있거나 계약 종료되면 내려가다 보니 제대로 관람하기가 힘들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 신통찮은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클래식 무비 아카이빙 사이트 등에 아카이빙해 놓고 관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지구를 지켜라!>는 4K 복원판이 제작된 상태이기에 추후 재개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5) 원작 영화는 기괴하고 엽기적이면서 암울한 내용을 감추기 위해 코믹한 포스터와 예고편으로 낚시 마케팅을 펼쳤으나, 22년 후 리메이크된 이 작품은 대놓고 기괴한 영화 전문 감독을 모셔와서 엽기적인 분위기를 마음껏 풍긴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6) 영화에서 외계인이 머리카락으로 통신한다며 미셸의 머리를 테디와 도니가 밀어버리는데, 이건 미셸 역의 엠마 스톤이 진짜로 촬영 내내 머리를 삭발한 것입니다. 엠마 스톤은 삭발하면 아침 준비 과정이 간단해져서 의외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7) 삭발 장면에 착안해서 LA 시사회에서 외계인이 아닌 것이 확실한 대머리나 삭발한 사람만 참석할 수 있다는 이색 조건을 걸었습니다. 심지어 간이 이발소가 설치되어서 부고니아가 쓰인 가운을 입고 현장에서 삭발하는 이벤트도 열었습니다. 한 참석자는 “영화도 2주 먼저 공짜로 보고 이발도 공짜로 하고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딨냐.“고 말했고 다른 참석자는 ”안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내 머리 모양을 싫어했는데 그들을 위해 삭발했다.“고 말하는 등 유쾌한 분위기에서 시사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도 동일한 방식의 시사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름은 '민머리 시사회'. LA 시사회와 달리 이발소는 설치되지 않았으나 대머리나 삭발한 사람만 참석이 가능하다는 조건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8) 황석희가 번역했습니다. 황석희는 미셸의 대사를 존댓말로 번역한 것에 대해, 잡혀오자마자 병구에게 욕부터 한 강 사장과 달리, 미셸은 테디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스타일의 말 자체를 험하지 않게 하는 캐릭터라고 해석했고, 이것이 연출 의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당시에는 이것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영화 본편을 감상하면 납치범들에게 지속적으로 협상을 시도하며 적당히 주눅 들어있는 미셸의 행동거지에 존댓말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 2026년 1월 26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을까요?

6. 마무리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부고니아>는 원작 <지구를 지켜라!>의 파격적인 설정을 자신의 독창적인 인류학적 시선으로 완전히 재해석하며, 관객을 시종일관 기묘하고도 불쾌한 긴장감 속에 가두어둡니다. 영화는 편집증적 망상과 실존적 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탐구하는데, 란티모스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미장센은 외계인 침공이라는 황당한 설정을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공포와 통제 욕구에 대한 서늘한 우화로 탈바꿈시킵니다.
 특히 엠마 스톤과 제시 플레먼스가 선보이는 기괴한 리듬의 연출은 압도적이며, 이들이 빚어내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는 비극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비극성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믿음의 붕괴와 인간의 고립을 다루는 방식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의 원숙미를 보여주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에도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견고함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강렬한 씨네필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고니아 예고편>

 
https://youtu.be/c3nqoSWNAew?si=pl4EdkY4CnyWU8_4

부고니아 공식 예고편 (출처: 유튜브 'CJ ENM 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