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 어쩔수가 없다
이 작품은 2025년 9월 24일 대한민국에서 극장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로,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 장르를 결합한 작품입니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미국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삼았으며, 이병헌(만수 역), 손예진(미리 역), 박희순(선출 역),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출연합니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가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후 가족을 지키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취업난과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와 토론토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개봉 일주일 만에 흥행 돌풍을 일으켜 13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 박찬욱 감독의 전작 <헤어질 결심>을 흥행 면에서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를 두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라고 밝혔으며, 봉준호 감독, 최동훈 감독 등이 시사회 후 극찬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작비 170억 원, 손익분기점 130만 명을 뛰어넘어 이미 해외 선판매와 영화제 수상 등으로 제작비를 회수했고,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대한민국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국제적 관심도 높습니다. 배우 이병헌과 손예진의 호흡, 박희순의 강렬한 연기가 극찬을 받았고, 특히 기자들 사이에서는 박찬욱 감독치고 대중 친화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에 얽힌 비화 및 촬영 중 배우들 간의 일화도 화제가 되었으며, 이병헌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2. 줄거리
영화는 25년간 한 제지회사에 몸담아 일해 온 ‘만수’(이병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만수는 아내 ‘미리’(손예진), 두 아이, 반려견과 함께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미국계 회사에 인수된 태양 제지에서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만수는 해고 명단 작성까지 지시받고 강하게 저항하지만 끝내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마음속 깊은 절망을 느낀 만수는 가족을 위해 3개월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은 점점 암울해집니다.

재취업에 실패한 만수는 결국 창고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집안 경제는 점점 악화가 됩니다. 아내 미리는 처음에는 만수의 약속을 믿고 씀씀이를 줄이지 않다가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치위생사로 치과에 취직해 생활비를 벌기 시작합니다. 두 마리 반려견도 미리 부모님에게 맡겨지며 집안 분위기는 처참해집니다. 만수는 치통에 시달리면서도 재취업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지만, 현실은 점점 냉혹해집니다.
절망 속에서 만수는 업계 1위 ‘문 제지’의 반장 자리에 지원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신입 직원들의 경쟁과 함께 만수의 경력은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문 제지 현장 반장 ‘최선출’(박희순)에게서 냉담한 무시와 굴욕을 당합니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자신이 설 자리는 없다는 사실에 만수는 내면 깊이 분노와 좌절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수는 극단적인 결심을 합니다.

‘누군가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그 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상황 논리에 빠진 그는 가짜 구인 광고를 내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위험한 계획을 세웁니다. 만수는 경쟁자 구범모, 고시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출까지 제거하며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인간 사냥에 나섭니다. ‘구범모’(이성민)의 집에서 그의 아내 ‘아라’(염혜란)가 젊은 신인배우와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받은 만수는 치밀한 계획을 이어가고, 결국 범모와 그 아내를 살해합니다. 이어 ‘고시조’(차승원) 역시 만수가 손쓴 덫에 걸려 제거되고, 마지막 목표인 선출과는 술을 마시며 기회를 엿보다 그를 랩과 테이프로 감싸 땅에 묻어버립니다.

한편, 만수의 아내 미리는 남편의 이상한 행동들을 어렴풋이 눈치채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의 범죄행위조차 묵인합니다. 만수는 주변 증거를 완벽히 없애고, 마치 선출이 혼자 술을 마시다 죽은 것처럼 위장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만수는 가족과 함께 있는 듯 평온한 얼굴을 보이며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한 듯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성과 윤리가 완전히 부서진 비극이 숨겨져 있습니다.
결국 만수는 극한 생존 본능에 따라 경쟁자를 제거하며 자리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이는 가족과 자신의 인간성 파괴를 대가로 한 잔혹한 성공입니다.
3. 평가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미디어 프레스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국제 비평가 평점(ICS) 전체 7위, 이탈리아 비평가(이탈리아 평론가 부문) 전체 3위, 국제 평론가 부문 전체 7위를 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무관에 그쳤습니다.
영화제 초청 기자들에 따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다음으로 대중친화적이라고 합니다. 감독 본인도 흥행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고, 본인 작품 중에서는 영화제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다며 대중성의 측면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박찬욱 감독은 영화 개봉 시 항상 대중성을 강조해 왔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현재까지 로튼 토마토 신선도 100%, 메타크리틱 스코어 86점을 기록하는 등 해외 평점 사이트의 점수는 상당히 준수합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개봉 직후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 6점대를 기록하는 등 평론가와 일반 관객의 평가가 갈리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대중성을 의식한 듯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소재나 배우 등 여러 요소들에서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지만, 전개와 연출 등에서는 여전히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개봉 초기 한국 관객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유독 상징이나 미장센의 사용이 많은 작품입니다. <아가씨>까지는 상징이나 미장센은 덤이고 전개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최소한의 구조를 잡을 수 있다는 평이 주류였다면, <헤어질 결심>을 거쳐 본작에 이르러서는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상징이나 미장센이 관여하는 부분이 많고 서사 전개도 만수의 가정과 취업 및 범죄 현장을 오가는 등 일직선적이지 않기에 일정 부분 해석을 요구합니다. 평론가 평은 전작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고 영화제 방문 관객들도 좋은 반응을 보내지만, 대중적이라는 말을 듣고 간 일반 관객들 사이에선 개연성 없고 장황한 살인극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특징에서 기인합니다.
유머나 수위, 호흡 등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더 대중적인 편이나, 여전히 박찬욱 감독의 색채가 굉장히 짙다는 평입니다. 특유의 당혹스러운 초현실주의적 연출이나 한 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 수위를 대폭 줄였지만 그럼에도 폭력성이나 불편하고 불쾌한 시각적 표현 등 스타일이 여전히 강해 대중성보단 예술성이 더 강한 전형적인 박찬욱스러운 작품이란 평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4.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
비판하는 측에서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위기에 몰린 만수의 극단적인 행동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습니다. 1년 간의 재취업 실패, 가장으로서의 체면, 어렵게 지킨 집에 대한 집착 등과 같은 동기들이 결국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설명시키기엔 부족했다는 평이 주를 이룹니다. 만수는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인물이며, 이런 인물이 회사에서 잘리자마자 화분으로 최선출을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 죄 없는 제지 전문가들을 둘씩이나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 개연성과 현실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비판받던 설정을 어느 정도 보완했으나, 주인공이 잘못된 믿음 혹은 확증편향에 따라 허술한 살인을 저지르고, 우연적으로 혐의를 벗어나게 된다는 핵심 설정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어 원작과 마찬가지로 현실성에 대한 지적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2020년대의 한국이 배경이지만, CCTV가 초반 만수가 범모를 스토킹 하는 장면 외에는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지적받기도 합니다. 형사가 태블릿을 들고, 공장이 무인화되는 시대가 배경이기에 이런 지점에 대한 의문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1년 간의 무직 생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빌다가 조롱을 당하기까지 했을 때에 살인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 극의 흐름을 크게 해칠 정도로 이상한 설정이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이 무시당하거나 조롱당했을 때의 분을 못 참고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실제 사회에서도 꽤 있는 일인 데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살인을 시도하나 겁에 질리고 서툴러하며 계속 실패하거나 얼렁뚱땅 마무리 짓는 모습에서 나오는 심리변화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또한 과거에 술을 마시고 아들을 폭행한 전력이 있는 등 만수의 숨겨진 폭력성을 고려할 때, 살인의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보는 의견도 많습니다. 일부 개연성에 작은 문제들은 있을 수 있으나, 애초에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개연성과 현실성을 깐깐하게 따지는 장르도 아닌 데다가, 극적인 상황들로 인해 타락해 가는 만수의 모습을 통해 "정말 살인이 어쩔 수가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주제 의식을 전달하도록 감독이 의도한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서사적 완성도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특히 2025년 신림동 식당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공교롭게도 살인까지 저지를 이유가 아님에도 3명을 살인하는 과정과 심리를 보여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현실이 영화를 능가했다는 평도 종종 보입니다.
또한 수많은 조연 캐릭터들을 극에 잘 녹여냈던 전작과 달리, 본작은 만수와 미리 부부를 제외한 다른 조연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소모되었다는 혹평도 존재합니다. 특히 고시조의 경우는 서사나 주제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나 그 묘사의 방식이 지극히 도구적이며, 철저하게 주인공 유만수의 심리적, 물리적 죄의식으로서만 기능합니다. 따라서 시조는 단일한 캐릭터로서의 인상은 무의미하지만 작품 전체에서는 핵심적 전개 요소로 활용된 양면적인 양상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떤 측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만한 부분입니다.

5. 제작 비화
1) 원작 소설의 두 번째 영화화로, 첫 영화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2005년작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입니다. 그 인연으로 <어쩔수가 없다>의 제작에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KG PRODUCTIONS가 참여하여 한국-프랑스 합작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2)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한 작품이었습니다. 원래 2017년에 할리우드에서 영어 영화로 제작할 준비를 하였으나, 투자가 되지 않아 무산되었습니다.
3) 본래 박찬욱이 제작 기간 동안 생각했던 영화의 제목은 <모가지>와 <도끼>였습니다. 하지만 두 제목 모두 너무 잔인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사는 마음인 <어쩔수가없다>를 제목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외에 <가을에 할 일>도 제목 후보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4) 제목의 올바른 띄어쓰기는 '어쩔 수가 없다'입니다. 제목을 띄어쓰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 없다'는 내게 항상 입에 붙어 있는 말"이라며 "관객들이 감탄사처럼 한 단어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고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나 툭 튀어나오는 표현인 만큼 일부러 띄어쓰기도 없이 한 단어처럼 지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5) 박찬욱 감독이 손예진에 대해 "이병헌보다 훨씬 어려운 인물을 연기했다"며 "미묘한 표현의 대가"라고 칭찬했습니다.

6. 마무리
영화 <어쩔수가 없다>는 현실과 욕망의 경계선 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 심리를 외과적으로 해부하는 ‘심리 실험’에 가깝습니다. 감독의 연출은 과잉 없이 절제되어 있으며, 마치 모든 장면이 철저히 계산된 듯한 리듬을 유지합니다. 화면 구성과 조명에서도 관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미묘한 대비가 돋보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교차 속에서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탁월하며, 특히 정적인 숏의 활용은 캐릭터의 도덕적 무력감을 더욱 부각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축입니다. 주연 배우의 미묘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내면의 균열을 드러내며, 대사보다는 침묵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감정 과잉이나 멜로적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긴장을 유지하는 힘이 대단합니다. 또한 음악의 사용 역시 절묘하게 절제되어 있는데, 때로는 완전한 무음이 오히려 더 큰 감정의 파장을 일으킵니다.
이 영화의 서사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음’이라는 숙명적 감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윤리적 모순과 인간의 나약함을 관객에게 되묻습니다. 엔딩에 이르면 우리는 인물들의 선택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며, 영화 언어로서의 완성도와 주제의식의 깊이를 동시에 품은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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