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 킬 빌 Vol.1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부작 액션영화 중 1편입니다. 영화 내용은 타란티노가 지금껏 보아왔던 B급 액션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래는 3~4시간 분량의 한 편으로 개봉하려던 것을 제작사가 상영 시간에 부담을 느껴 2003년에 1부, 6개월 뒤인 2004년에 2부로 나눠 개봉했습니다. 한 편으로 만들려고 계획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두 편이 각각 다른 분위기로 전개됩니다. <펄프 픽션>에서 나왔던 챕터 분할을 그대로 써먹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1부는 1970년대 일본 사무라이극, 2부는 홍콩 무협 영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B급 영화의 감성답게 키치의 절정을 보여주는데, 조직원들의 복장도 그렇고, 미국인이 굳이 무기로 일본도를 사용하는 등 진지하게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많습니다. 그러나 타란티노가 워낙 진지하게 연출해서, 직접 보면 웃음이 별로 나오지 않고 대단히 감각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1부는 일본 영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오렌 이시이의 과거 편은 Production I.G를 통해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캐릭터 디자이너는 타지마 쇼우이며, 연출 및 작화는 나카자와 카즈토가 담당했습니다. 스태프 말로는 직접 스토리보드를 상세히 그려줄 만큼 열성이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실사 영화에서, 그것도 번듯한 할리우드 무비에 갑자기 일본 애니메이션이 튀어나오는 연출 자체가 충격이었고, 또한 날이 선 것 같은 내용과 그림마저 인상적입니다.
2. 줄거리

4년 전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작은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던 도중 자신이 속했던 조직인 데들리 바이퍼스의 습격을 받습니다. 신랑을 포함해 얼마 안 되는 몇 명의 하객까지 모두 사망합니다. 경찰들은 현장 조사를 위해 예배당을 방문하고 그녀가 아직 살아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많은 공격을 받았던 더 브라이드는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녀가 살아있음을 안 데들리 바이퍼스의 ‘엘 드라이버‘(대릴 한나)는 간호사로 위장을 하고 더 브라이드를 확실하게 죽이려 하지만 그 순간 두목인 ‘빌‘(데이비드 캐러딘)에게서 임무 중단 요청을 받고는 그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4년 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더 브라이드는 당시 임신 중이던 자신의 상태를 기억하고 배를 만져보지만 이미 아이는 자신의 몸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데들리 바이퍼스를 향한 복수심도 잠시 오랜 혼수상태 때문인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데 그런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남자의 정체는 혼수상태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간호사 ‘벅‘(마이클 보웬)과 성매매를 하러 온 남자입니다. 더 브라이드는 자신에게 성행위를 시도하려던 남자를 먼저 죽인 후 벅까지 죽입니다. 벅의 차키를 훔쳐 나온 더 브라이드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겨우 차에 탑승해서는 자신의 다리감각을 돌려놓기 위해 애를 쓰고 몇 시간 뒤, 다리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에 성공한 더 브라이드는 복수할 첫 번째 타깃으로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를 고릅니다.
오렌은 중국계 미군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오렌이 9살이 되던 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이후 암살자로서 많은 훈련을 한 오렌은 11살이 되던 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마츠모토를 죽이며 복수에 성공하고 그 이후 쭉 암살자의 길을 걷습니다.
오렌 이시이를 죽이기 위해 일본으로 간 더 브라이드는 오렌을 만나기 전 한 일식당에 들릅니다. 대화를 나누던 더 브라이드와 식당 주인, 더 브라이드는 찾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식당 주인은 누구를 찾는지 묻고 더 브라이드는 ‘힛토리 한조(치바 신이치)‘라고 답합니다. 사실 힛토리 한조는 더 브라이드가 대화하던 식당주인이었습니다(알고 찾아왔겠지만). 그는 사무라이 검을 만들던 장인이었고 더 브라이드는 그 검을 달라고 하지만 한조는 자신은 이미 은퇴했고 살인을 위한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한조는 예전 데들리 바이퍼스의 두목인 빌의 스승이었고 더 브라이드는 이를 빌미로 검을 받게 됩니다.
오렌 이시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조직의 수장이 되었기 때문에 찾기 쉽다는 이유로 첫 번째 타깃이 되었으나 그만큼 그녀를 따르는 세력 또한 많았습니다. 더 브라이드는 오렌의 조직이 큰 모임을 갖던 날 오렌의 앞에 나타납니다. 오렌을 지키는 수하들을 가볍게 제압하지만 오렌의 경호원인 여고생 ‘고고 유바리’(쿠리야마 치아키)에게 막히게 되는데 이때 철퇴를 사용하는 유바리와 더 브라이드의 결투씬이 압권입니다. 철퇴라는 무기를 상대로 더 브라이드는 조금씩 대미지를 입지만 타고난 전투능력으로 위기의 빠진 상황에서 반격을 성공하며 고고 유바리까지 처리합니다. 하지만 오렌에게는 크레이지 88인으로 불리는 친위부대가 남아있었는데 더 브라이드는 1대 88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에서 엄청난 센스를 발휘하며 어린 남학생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원을 제압합니다.

모든 수하들을 쓰러트리고 드디어 오렌을 만나게 된 더 브라이드, 둘은 사무라이 검으로 맞붙게 되고, 이전의 싸움으로 많은 대미지를 입은 더 브라이드가 오렌에게 밀리면서 승리는 오렌 쪽으로 기우는 듯했으나 결정적인 한 방으로 더 브라이드가 승리합니다. 더 브라이드는 오렌의 오랜 친구이자 심복인 소피를 살려두는데 이것은 자신의 행동을 빌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소피를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가는 빌, 그가 더 브라이드의 아이가 아직 살아있음을 언급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3. 사운드트랙
우탱 클랜의 RZA가 총괄 프로듀싱한 음악 또한 어딘가 B급 센스가 느껴지며, 의외의 곡이 튀어나오지만 전혀 위화감 없이 임팩트를 부각하는 타란티노의 선곡 센스가 돋보입니다. 그 덕에 각종 예능 매체에서 재활용되었으며, 그중에선 국내에선 복수 대상과 마주쳤을 때 나오는 음악이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Action 싸인과 함께 나오는 음악도 킬 빌의 것입니다. 이 곡은 <사무라이 픽션>에서 배우로 등장하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작곡했습니다. 곡 제목은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입니다. 또한 소피의 팔을 베는 장면에서도 음악적 센스가 돋보이는데 엔리오 모리꼬네의 ’Death rides a horse‘의 테마곡이 나옵니다. 원작에선 무법자의 등장 같은 느낌이면 킬빌에선 그야말로 압도적인 포스와 엄청난 긴장감을 잘 표현해 줍니다. 타란티노가 자막 없이 보고도 감명을 받았다는 야쿠자 시리즈물인 <의리 없는 전쟁>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며, 작곡한 호테이 토모야스가 주연을 맡기도 한 <신 인의 없는 전쟁>의 주제가이기도 합니다.
브라이드와 오렌 이시이가 싸움을 시작할 때 나오는 음악은 그 유명한 Santa Esmeralda 버전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입니. 경쾌한 음악이지만 놀랍게도 비장한 분위기가 전혀 죽지 않습니다. 이 곡은 김지운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메인 테마로 사용한 것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합니다.
4. 오마주
이 영화가 워낙 오마주 덩어리라, <킬 빌 1, 2> 편이 오마주한 영화를 총망라하면 논문 한 편은 나올 분량이며 오히려 오마주가 아닌 장면을 찾는 게 더 어렵습니다.
1) 일본의 1970년대 초반 핑크 바이올런스물인 <슈라유키히메>와 <여죄수 사소리>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슈라유키히메>에서 구도를 똑같이 따온 장면도 많습니다.
2) 브라이드가 복수를 위해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가는 장면은 <흡혈귀 고케미도로>라는 1968년에 개봉한 특촬 호러 영화의 오마주입니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장면에서 석양이 유독 붉은데 위 영화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3) 녹엽정 전투에서 주인공이 입고 나온 노란색 트레이닝복은 <킬 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입고 나온 복장입니다.

4) 1부에서 등장하는 <킬 빌>의 최고 모에 캐릭터 고고 유바리는 B급 센스의 결정체입니다. 오렌 이시이의 여고생 보디가드면서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입니다. 여고생 캐릭터이므로 교복을 입고 등장하며 무기는 철퇴입니다. 그러나 얼굴이 안 보이는 액션은 아무래도 스턴트맨이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어서 쓰러진 시체를 잘 보면 털이 좀 있는 근육질 남자 다리임이 드러납니다(일부러 드러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 <배틀로얄>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해서 배틀로얄의 오마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타란티노는 배틀로얄의 대표적인 팬이기도 합니다.

5. 마무리
킬 빌 Vol.1은 '복수'라는 주제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감정,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까지 보여줍니다. 잔혹함 속에서도 미학을 추구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이상의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때때로 맞서 싸워야 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싸움이 누구를 향한 복수든, 아니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든, 그 과정에서 어떤 자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킬 빌 Vol.1은 단순히 멋진 영화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용기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가 보고 싶을 때, 또는 강렬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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