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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혹이라는 이름의 가장 잔인한 가스라이팅,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by 채채둥 202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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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포스터

1.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전기 범죄 스릴러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와 그의 연인 관계를 중심 시점에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201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뒤 같은 해 5월 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고,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형태로 소개되었습니다.
 연출은 범죄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조 벌링거가 맡았고, 마이클 워위가 각본을 담당했으며, 러닝타임은 약 108~109분으로 분류 장르는 범죄·스릴러입니다. 잭 에프론이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세련된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역을 맡아 기존 이미지와 상반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고, 릴리 콜린스가 테드 번디를 끝까지 믿으려 했던 싱글맘 연인 리즈 켄들 역을 맡아 심리적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극의 중심을 이끌었습니다.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테드의 또 다른 여성 캐럴 앤 분 역을, 헤일리 조엘 오즈먼트가 리즈 곁을 지키는 직장 동료 제리 역을 연기하고, 짐 파슨스와 존 말코비치가 각각 검사와 판사로 등장해 재판 장면의 긴장감을 살렸습니다.
 이 영화는 테드 번디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 행위 자체보다 그를 곁에서 바라본 연인의 시선, 그리고 언론과 대중이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범죄자에게 매혹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실제 연인 엘리자베스 켄들이 쓴 회고록 <The Phantom Prince: My Life with Ted Bundy>를 원작으로 삼아 극 중 주요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재구성했습니다. 공개 당시에는 잭 에프론의 연기 변신과 리얼한 재판 재현, 실제 영상·사진을 섞은 구성 등으로 호평을 받는 한편,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를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그려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도 불러일으켰고, 이런 논란이 오히려 작품 인지도를 높여 넷플릭스 범죄 실화 영화들 가운데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2. 줄거리

 1970년대 미국, 워싱턴주에서 싱글맘 ‘리즈’(릴리 콜린스)는 친구와 함께 간 술집에서 잘생기고 매너 좋은 법대생 ‘테드 번디’(잭 에프론)를 처음 만납니다. 그는 리즈의 경제 형편과 혼자 키우는 딸 몰리와의 관계까지 배려하며 금세 가족처럼 어울리고, 세 사람은 몇 년에 걸쳐 함께 사는 연인·사실혼 관계가 됩니다.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리즈와 테드

 

리즈의 눈에 테드는 성실하고 다정한 남자친구이자 좋은 아버지상에 가까운 존재로만 보이며, 이 기간 동안 둘의 행복한 일상 장면이 반복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TV 뉴스와 신문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실종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이어지며 경찰이 한 남성의 몽타주를 공개하는데, 리즈는 그 얼굴이 테드와 너무 닮았다는 생각에 동요합니다. 고민 끝에 결국 익명에 가까운 방식으로 경찰에 제보 전화를 걸어, 몽타주의 남자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비슷하다고 신고하고, 이는 훗날 테드 체포의 단서가 됩니다. 얼마 뒤 테드는 다른 지역에서 교통 단속에 걸렸다가 차 안에서 수갑, 몽둥이, 밧줄 같은 수상한 물건들이 발견되며 납치·살인미수 용의자로 체포되고, 리즈는 신문 1면을 장식한 그의 수갑 찬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결국 체포되는 테드


 테드는 자신은 누명을 쓴 피해자라며 전화를 걸고 편지를 보내 결백을 호소하고, 리즈 역시 그동안 보아 온 다정한 모습 때문에 쉽게 믿음을 거두지 못해 면회를 가거나 전화에 응답합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테드를 향한 혐의는 여러 연쇄살인 사건과 연결되고, 유타·콜로라도 등지에서 잇따라 기소되며 그의 이름은 전국적인 악명과 동시에 기묘한 스타성까지 얻게 됩니다. 그 사이 테드는 두 차례나 탈주에 성공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지만 결국 다시 붙잡힙니다.

결국 다시 붙잡혀 재판을 받게되는 테드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여대생 집단 피습 및 살인사건은 특히 잔혹했으며, 수법과 상황으로 미루어 경찰은 테드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플로리다 재판이 사실상 결정적인 심판대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테드는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캐럴 앤 분’(카야 스코델라리오)을 곁에 두고, 그녀의 애정과 관심을 활용해 언론을 조종하고 대중에게 ‘매력적인 무고한 남자’처럼 보이려 합니다. 국선 변호사는 테드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사형만이라도 피하자고 설득하지만, 테드는 이를 거부하고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겠다며 변호사를 공개적으로 창피 주고 교체해 버립니다.
 공개 생중계되는 재판에서 테드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기자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캐럴을 증인석에 세워 법정에서 즉흥적으로 구혼한 뒤 그녀가 받아들이면서 기묘한 ‘쇼’ 같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테드의 아이를 임신하고 재판장에서 결혼까지 하는 캐럴

 

캐럴은 이후 실제로 테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며, 유리창 너머 교도소 면회 장면 등에서 둘이 한 가족처럼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 모든 동안 리즈는 술에 의지하며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리즈 곁을 지키는 직장 동료 ‘제리’(헤일리 조엘 오스먼트)는 그녀에게 테드를 끊고 벗어나라고 조언하지만, 리즈는 자신이 처음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그를 완전히 떼어내지 못합니다.
 재판 후반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치아 자국(교합) 감정 등 물증이 제시되면서 테드에게 불리한 분위기가 굳어지고, 결국 배심원단은 모든 사건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립니다. 판사 ‘코워트’(존 말코비치)는 판결문을 읽으며 그의 지능과 잠재력을 언급하고, 다른 길을 갔더라면 훌륭한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라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범행이 “지극히 사악하고, 충격적이며, 악랄하다”는 말과 함께 전기의자 사형을 선고합니다. 테드는 마지막까지 무죄를 주장하지만,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사형수로서 교도소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끌려나가는 테드


시간이 흘러, 영화는 테드의 사형 집행을 앞둔 약 10년 후 시점으로 이동합니다. 리즈는 테드에게 편지를 받고 오랜 고민 끝에 면회를 가는데, 유리 칸막이 너머로 마주 앉은 테드는 예전처럼 다정한 미소를 짓고 예전 연인처럼 말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리즈는 그를 믿기 위해 자신이 감당했던 죄책감과 고통을 털어놓으며, 처음 몽타주를 보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하고, 진실을 말해달라며 목이 잘린 피해자 사진을 유리창에 밀어붙입니다. 테드는 처음에는 여전히 결백을 주장하며 사진을 외면하지만, 리즈가 더 이상 그의 말에 속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침묵 끝에 유리창의 김 서린 부분에 손가락으로 시신 훼손 방식을 암시하는 글자를 써넣습니다.

리즈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테드

 

이는 말로 된 자백 대신, 자신이 실제로 그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리즈에게만 직접 인정한 순간으로, 리즈는 충격과 공포, 해방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면회실을 떠납니다.  
 엔딩 자막에서는 테드 번디가 실제로 30명의 여성 살해를 자백했지만, 수사 당국은 피해자가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는 설명과 함께, 리즈와 딸 몰리가 이후 술을 끊고 워싱턴주에서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캐럴이 테드가 수감 중일 때 그의 딸을 낳았다는 후일담이 간략히 제시됩니다. 마지막에는 실제 테드 번디의 인터뷰·재판 영상이 짧게 삽입되며, 영화 전체가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막을 내립니다.

3. 평가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는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의 극악무도한 범죄 행각 자체에 천착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인식의 괴리'를 집요하게 파고듦으로써 범죄 영화의 전형적인 문법을 비틀어냅니다. 조 벌링거 감독은 관객을 철저히 피해자이자 연인이었던 리즈의 시점에 결속시키는데, 이는 가해자의 매력적인 사회적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을 관객이 리즈와 동시에 점진적으로 깨닫게 만드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영화는 자극적인 살해 현장을 전시하는 대신 법정 드라마와 일상적 멜로의 형식을 취하며, 대중문화가 어떻게 괴물을 미화하고 소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메타비평적 시각을 견지합니다. 특히 잭 에프론의 연기는 이 작품의 핵심적인 성취로, 그는 번디가 가진 소름 끼치는 스타성과 지적인 오만함을 완벽하게 체현하며 '악의 평범성'이 아닌 '악의 매혹'이라는 위험한 경계를 시각화합니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까지 번디의 무고함을 믿고 싶어 하는 리즈의 감정선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니,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은 서사적 배경으로 밀려나며 윤리적 정당성 측면에서 다소 위태로운 줄타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범죄자의 내면을 탐구하기보다는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심리적 맹점을 날카롭게 해부한 심리 스릴러이자, 이미지 정치의 시대를 향한 서늘한 경고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테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리즈

4. 제작비화

1) 잭 에프론의 '멘탈 붕괴'와 체중 감량

디즈니 채널의 <하이스쿨 뮤지컬> 스타였던 잭 에프론에게 이 역할은 거대한 도전이자 공포였습니다. 잭 에프론은 촬영 후 한동안 테드 번디의 어두운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영혼을 정화해야 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촬영이 끝날 때마다 명상을 하거나 향을 피우며 캐릭터를 털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실제 테드 번디

 

실제 테드 번디는 재판때 항상 수트를 갖춰입고 등장했다

 

또한 실제 테드 번디의 날카롭고 마른 턱선과 이미지를 닮기 위해 잭 에프론은 약 6kg 정도를 감량했습니다.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니라 번디 특유의 예민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철저한 식이요법을 병행했습니다.

 

2) 실제 피해자의 유족이 촬영장을 방문하다?

영화의 감독 조 벌링거는 범죄 다큐멘터리의 거장답게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의 촬영 전 철저한 고증을 거쳤는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실제 테드 번디에게 살해당할 뻔했다가 탈출했던 생존자 중 한 명이 촬영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잭 에프론이 분장한 모습을 보고 "그(테드 번디)를 다시 보는 것 같아 너무나 섬뜩하다"며 경악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이는 잭 에프론의 외적 싱크로율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3) 판사 역의 존 말코비치가 했던 '특별한 조언'

영화에서 냉철한 판사 역할을 맡은 전설적인 배우 존 말코비치는 잭 에프론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말코비치는 잭 에프론이 연쇄살인마 연기에 너무 매몰되어 괴로워하자, "너는 테드 번디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테드 번디라고 믿게 만드는 '연기자'를 연기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조언 덕분에 에프론은 번디의 가식적인 면모를 더 탁월하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4)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 배우 데뷔

영화 초반, 테드 번디를 처음으로 체포하는 고속도로 순찰대원 '밥 헤이워드' 역을 유심히 본다면, 이 역을 맡은 배우는 세계적인 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의 보컬 제임스 헷필드입니다. 평소 메탈리카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친분이 깊었던 조 벌링거 감독이 그를 직접 캐스팅했습니다. 제임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가 법을 집행하는 강인한 경찰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5) 원작 제목의 기원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의 원제인 <Extremely Wicked, Shockingly Evil and Vile>는 꾸며낸 문장이 아닙니다.
이 길고 강렬한 제목은 실제 테드 번디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에드워드 카워트 판사가 판결문에서 실제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그는 번디의 범죄가 "극도로 사악하고, 충격적으로 악하며, 저질(Extremely Wicked, Shockingly Evil and Vile)"이라며 분노를 표했습니다.

테드 번디와 결혼한 캐롤
테드 번디의 희생자들 중 일부

5. 마무리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는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기존 장르물의 관습을 정면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매우 도발적이고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대중이 기대하는 '슬래셔' 혹은 '하드보일드'한 살육의 현장을 과감히 거세하고, 그 자리에 번디의 비정상적인 스타성과 그에게 매료된 대중의 집단적 최면을 채워 넣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나 또한 그의 기만에 속아 넘어갈 수 있는 나약한 관찰자"임을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잭 에프론의 연기는 단순히 외형적인 모사를 넘어, 선한 청년의 얼굴 뒤에 숨겨진 공허한 자아를 서늘하게 드러내며 극의 긴장감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다만, 리즈의 심리적 갈등에 서사의 지나치게 많은 지분을 할애한 탓에 영화적 템포가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에 갇히거나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시네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지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보다 화려한 '쇼'에 열광하는 인간의 본성을 비춘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선정주의에 매몰되기 쉬운 범죄 영화계에서 꽤 영리하고 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