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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욕망과 해방이 교차하는 미혹의 미장센, <아가씨>

by 채채둥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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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포스터

1. 영화 아가씨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고 2016년 6월 1일 한국에서 개봉한 심리 스릴러 작품입니다.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주연 배우는 김민희(히데코 역), 김태리(숙희 역), 하정우(백작 역), 조진웅(이모부·코우즈키 역) 등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부잣집 상속녀 히데코와 그녀를 둘러싼 하녀 숙희, 그리고 숙희와 공모한 백작이 펼치는 속고 속이는 음모와 관계에 있습니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세계적 관심을 받았고, 이후 전 세계 176개국에 선판매되는 등 국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국내에서는 42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찬욱 감독의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 영화 중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비평적으로도 연출, 줄거리,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한국 영화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오른 뒤 수상까지 했습니다. 또한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애 연기가 사회적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에서 자신만의 미장센과 섬세한 연출력을 최대한 발휘했으며, 대사의 양도 본인의 전작들 중 가장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촬영, 편집, 음악 등 스태프들의 역량 또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외국 에이전트들이 두 번째 관람을 통해 영화의 숨은 의미를 더 깊이 이해했다고 밝혀 감독 역시 ‘한 번 더 보기를 권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는 영화입니다.

2. 줄거리

 영화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아래 철저한 감시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상속녀 ’히데코’(김민희) 곁에,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가 찾아옵니다. 숙희는 사실 장물아비 집안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로, 교활한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히데코의 신임을 얻어 그녀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든 뒤, 결혼하면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넣어 재산을 빼앗는 음모의 연루자입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처음에 숙희는 순진하고 외로운 히데코를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지만, 함께 생활하며 점점 그녀에게 연민과 보호 본능, 그리고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계획대로 백작은 미술선생으로 위장해 히데코에게 접근하고, 숙희는 하녀로 곁을 섬기며 두 사람의 사랑이 싹틀 수 있도록 돕습니다. 히데코는 숙희와의 진심 어린 교감, 키스를 나누며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결국 백작의 구애를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숙희와의 동성적 감정에도 혼란스러워합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결혼식 이후 일본으로 도주한 셋은 백작의 계획에 따라,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넣으려 하지만, 현장에서 반전이 벌어집니다. 정신병원에 갇히는 건 히데코가 아니라 숙희였던 것입니다. 사실 히데코와 백작은 숙희를 속여 정신병원에 넣고 재산을 나눠 갖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또 한 번 뒤집힙니다. 2부에서는 히데코의 과거와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이모와 함께 이모부(조진웅)에게 음란한 고서 낭독을 강요당하며 살아왔고, 세상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갖고 있었으나, 숙희와 진심으로 가까워지며 주체적 인간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히데코 역시 백작과의 사기 공모에 응했지만, 숙희에게 진심으로 빠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결국 백작과 조진웅 모두를 속이기로 결심하고, 숙희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것도 일시적인 계획임을 눈치챕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3부에서는 숙희가 지능적으로 병원을 탈출합니다. 한편 히데코는 백작에게 아편을 먹이고 그를 기절시킨 뒤 재산을 현금화해 숙희와 도주합니다. 백작은 이모부 코우즈키의 지하실에 잡혀 온갖 고문과 고통 끝에 결국 수은이 든 담배를 피워 죽음을 맞이합니다. 히데코와 숙희는 백작의 신분증을 위조해 남장한 히데코와 함께 상하이행 배에 오릅니다. 새 삶을 향해 도주하는 도중, 둘은 사랑을 확인하며 소유와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의 바다를 바라보며 영화는 끝납니다.

3. 영화의 특징

 세라 워터스의 역사 스릴러 소설인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며, 시대를 일제강점기로 각색했습니다.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이 주연을 맡았고 조연으로 김해숙과 문소리도 합류했습니다. 일본에서 일부 로케이션 촬영을 했으며, 제작비가 무려 약 15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과 비교적 긴 상영시간이 예상되는데, 150억 원의 제작비를 국내에서만 회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CJ에서는 <설국열차>처럼 116개국에 선판매하여 손익분기점을 최대한 낮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감독 본인이 생각보다 낮은 300만 정도가 손익분기점이라고 얘기했고, 429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2016년, 한국 영화로서는 4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경쟁부문에서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류성희 미술감독이 벌칸상을 수상했습니다. 벌칸상은 미술, 음향, 촬영 등의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에게 수상하는 상입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기술 대상 대신 2003년에 제정된 상인데 미술 부문 스탭이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까지는 음향 및 촬영 부문에서만 받아왔던 것입니다. 의미 있는 수상이나 국내에서는 단신 처리되었습니다.
 주연 캐스팅 당시 강도 높은 노출 연기를 해야 하며 수위는 타협 불가라는 조건을 내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씨네 21 1000호 기념 표지 모델로 박찬욱 감독과 주연 3인방이 선정되었는데, 촬영 전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떻게 감독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에 대해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원작자인 세라 워터스는 영상화에 대해 딱히 코멘트는 없었지만 이후 원작 소설과 내용이 다른 대본을 받아보고는 맘에 들어했으며, 덧붙여 "원작(based on)이라기 보단 영감을 받았다(inspired by)는 표현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원작과 많이 달라진 부분이 신경 쓰였던 듯합니다. 영화 개봉 이후 원작자인 세라 워터스는 이 영화를 가리켜 좋은 의미로 "미친 영화"라고 하며 3번이나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중반부 이후 본인 소설의 플롯을 완전히 비튼 점이 꽤나 신선하고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제작자인 임승용 대표에게 친필로 글을 남기는 등, 여러모로 영화화에 대해 흡족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초반 부분만 원작을 따라가고, 중반부터는 다른 이야기로 전개한다"라고 하면서 원작 팬들의 원작 파괴 우려도 있었습니다. 감독의 전작 중 원작에서 설정만 빌려온 작품과 달리, 전체적인 큰 스토리는 원작을 많이 따라갔었습니다. 1, 2, 3부 중 1부는 원작과 거의 같으나, 2부부터는 스토리가 상당히 다릅니다.
 제목을 <아가씨>라고 지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감독은 시나리오북에서 '처음 불러봤을 때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그것으로 제목을 삼자고 외쳤다. 아저씨들이 앞장서 오염시킨 그 명사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리라'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단순한 인칭대명사 중 하나인 아가씨란 단어에 성적 대상화가 들어가며 '술집 아가씨' 등의 은어로 쓰이거나 성적 시선이 담긴 단어로 쓰이게 되는 현실에 대해 비꼰 듯합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4. 평가

 2016년 가장 주목받은 비영어권 영화 중 하나입니다. 북미에서는 폭발적인 호평을 얻었습니다. 뉴욕 타임스, 버라이어티, 빌리지 보이스, 할리우드 리포터 등 영미권의 여러 매체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면서 북미 일각에서는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등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는 신선도 95%, 평점은 8.3로, 84점을 받은 메타크리틱과 더불어 2016년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최고 평점을 받으며 호평이 이어졌으며, 로튼 토마토에서는 신선도 보증 마크와 함께 2016년 영화 top100 리스트에서 24위를 기록, 메타크리틱에서는 평론가들이 선정한 2016년 영화 순위 중 여타의 쟁쟁한 할리우드 or 비할리우드 영화들 사이에서 9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도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명성 때문인지 아시아 영화치고 평점을 매긴 표본 수가 많은 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북미에서의 압도적인 호평을 바탕으로 미국 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메타크리틱에서 집계하는 아카데미 레이스 스코어에서 인증을 받지 않은 북미여성비평가협회, 하와이비평가협회, 시카고독립영화비평가협회를 제외한 총 19개의 외국어영화상 수상기록으로 외국어영화 부문 1위를 달성했습니다.
영진위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를 영화 <밀정>으로 밀어주다 예선 1차에서부터 탈락해서, 왜 <곡성>이나 <아가씨>를 올리지 않았냐는 반응이 나왔었습니다. 영진위의 결정이 많이 아쉬운 것은, 인지도로만 따지자면 <올드보이>의 대히트로 인해 해외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한국 감독으로 손꼽히는 박찬욱 감독이 있고, 영화의 마케팅이나 배급 능력을 봐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에, 해외 선판매 최고 기록을 세운 <아가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배급사인 아마존 스튜디오는 본 작의 외국어영화상 출품을 상당히 기대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는 곧 출품을 했다면 배급사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므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아무래도 각 국의 수많은 작품들이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되는 마당에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그 많은 영화들을 일일이 다 눈여겨보지는 않을 것이며, 결국은 미국 현지에서 얼마나 화제가 되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느냐가 심사위원들의 눈을 끄는 점이 될 텐데, 현지 비평가 레이스에서 눈에 띄게 우수한 성적을 낸 본 작으로서는 아카데미 후보 노미네이트만큼은 여느 때보다도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었기에 영진위의 이러한 독단적인 선택에 비판의 여론이 강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준 점수는 4점 만점에 2.2. 칸 영화제에선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어마어마하게 높은 수위 때문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나가는 관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평단의 평가는 중간 정도였습니다. 사실 놀라울 것도 아닌 것이, 심사위원 상을 받았던 <올드보이>와 <박쥐>도 2.4점을 받았었습니다. 박찬욱의 영화에 대한 극단적인 호불호는 오래전부터 늘 있어왔기에 이젠 본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합니다.
 칸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평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프랑스 현지 개봉 이후에는 36개 프레스에서 평균 별점 3.8에, 관객 평점 4.3이라는 준수한 평가를 받으며 박찬욱 감독에게 비교적 평가가 박했던 유럽에서도 호평을 자아내며 흥행과 비평에서 고루 좋은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5. 김민희와 김태리

 극을 이끄는 두 여배우들의 연기력과 매력 발산은 가장 큰 흥행 요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 김민희는 낭독극, 일본어, 동성애, 이중적인 성격 등을 연기해야 하는 쉽지 않은 배역이었음에도 매우 잘 소화해 내며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일본어 대사의 분량이 상당한 영화이기 때문에, 주역 배우들은 일본어 교습을 별도로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김민희는 일본어 낭독극 분량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일본인 현역 여배우 2명에게 낭독 연기와 일본어를 동시에 배웠습니다. 특히, 김태리의 일본어 연기는 일본 기자가 놀랄 정도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김태리는 큰 규모의 영화에 등장한 신인배우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받으며 신인상 유력 후보로 언급되었습니다. 이런 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호흡을 바탕으로 극 중에서 다양한 매력을 뽐낸 덕분에 영화 흥행뿐만 아니라 개인 팬덤까지 커지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두 배우의 호연은 평단의 높은 평가를 이끌어내어, 결국 제37회 청룡영화상에서 김민희는 여우주연상을, 김태리는 신인여우상을 나란히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컷

6. 마무리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단순한 서사 구조를 넘어선, 감각과 심리의 층위를 정교하게 얽어낸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원작 소설인 핑거스미스를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맥락 속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각색이 아닌 통렬한 재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치밀한 구도와 인물 간의 시선 교환, 디테일을 통해 관객을 기묘하게 긴장시키면서도 동시에 매혹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 3부 구조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서사의 반복과 반전을 통한 스릴을 형성하는 동시에, 주체와 객체가 역전되는 쾌감을 선사합니다. 처음에는 속고 속이는 서스펜스처럼 보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들의 감정적 해방과 연대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화면의 색채, 건축적 공간 활용, 그리고 세세한 의상과 소품까지 철저히 통제된 미장센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들의 내적 풍경을 시각화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에로틱스와 폭력을 교차시키며 경계의 영화적 쾌락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자극적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 시선과 주체성의 문제까지 끌어올리며 장르적 기대를 전복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극도로 세련된 감각적 체험으로 다가왔습니다. <아가씨>는 단순히 잘 만든 스릴러가 아니라,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증명해 내는 하나의 선언문이라고 몰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