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 화양연화
2000년 개봉한 홍콩영화입니다. 제목은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감독과 배우들이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감독 왕가위가 당대의 톱스타인 양조위와 장만옥을 캐스팅해 중년의 두 남녀의 완숙한 사랑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진중한 스토리에 녹아든 왕가위 특유의 미장센이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2000년 5월 20일 칸 영화제에서 초연되었으며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고, 양조위는 홍콩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종종 역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자 아시아 영화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16년 BBC의 설문조사에서 전 세계 영화 평론가 177명이 "상실과 욕망이라는 보편적인 단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표현한 영화는 없었다"며 '21세기 두 번째로 위대한 영화'로 선정됐습니다. 2022년 Sight & Sound의 역대 최고의 영화 비평가 투표에서 5위를 차지, 2012년의 24위에서 순위가 상승했으며 1975년부터 2022년까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영화입니다.

2. 줄거리
1962년, 홍콩의 한 낡은 아파트에 두 가구가 이사를 옵니다. 첫번째는 '차우'(양조위) 부부이고 두 번째는 '첸'(장만옥) 부부입니다. 둘은 잘못 온 짐을 돌려주며 통성명을 합니다. 첸의 남편은 무역회사에 다녀 출장이 잦았습니다. 한 회사의 비서로 일하는 첸은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외로운 날이 많았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홀로 노점을 찾아 음식을 포장하곤 합니다. 차우도 야근이 잦습니다. 아내와의 잦은 다툼으로도 힘들어합니다. 어느 날 차우는 일찍 퇴근을 하는데,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첸과 차우는 노점 입구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고, 급기야 둘이 만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둘은 서로의 배우자가 배우자의 외도의 대상임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게 되고, 외로움을 벗어난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은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되어 유혹하며 외도의 시작점을 알아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상처와 배신감은 커져만 갑니다. 두 사람의 불륜을 연습하는 만남과 연기는 계속되고 서로 끌리기 시작하지만, 서로 거리를 두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어느 날 차우가 비를 맞아 아프고 첸이 죽을 갖다 줍니다. 이날 둘은 연기를 그만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후 차우는 평소에 쓰고 싶어 했던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첸도 새로운 일을 시작합니다. 이를 계기로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첸이 작업실을 새로 마련하게 되면서 거기서 더욱 잦은 만남을 가집니다. 이제 둘은 눈을 바라보는 것도 익숙해지고 함께 웃고 서로 응원해 주며 더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이들은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그토록 경멸하던 불륜이 아닐까'. 결국 폭우 속에서 둘이 만나게 되고 차우가 고백을 합니다. 그들은 차우가 첸을 단념할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연기를 합니다. 첸도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을 깨달은 날 이별 준비를 하게 되는 가슴 아픈 상황입니다. 결국 차우는 홀로 떠나고 첸은 차우의 빈 작업실을 찾아갑니다. 그 1년 뒤, 출근한 차우가 집에서 사라진 물건과 립스틱이 묻은 담배 한 개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걸려온 대답 없는 전화에서 상대가 누군지 알아챕니다. 그리고 3년 후, 다시 홍콩의 그 장소를 찾은 차우, 첸은 가정을 유지하고 있고 아들이 있으며 계속 거기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로 옮겨지는 장면, 여행 중인 차우가 나무의 작은 구멍에 비밀을 털어놓고 홀가분하게 떠나며 영화는 마칩니다.
3. 비하인드 스토리
화양연화의 결말은 거의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으면서 일정에 맞추어 영화 완성이 시급해지자 앙코르와트까지 가서 급하게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극 중 두 남녀 간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죄책감과 이성 속에서 노골적인 장면 없이 느낌만으로도 강렬한 자극을 주는 진행을 합니다. 또한 극 중 원래 양조위와 장만옥의 베드신도 있었는데 영화의 취지에 맞지 않아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베드신이 삭제된 것이 천만다행인 것 같습니다. 또한 원래 영화의 첫 구성은 불륜은 하지 않는다는 첸에 대한 차우의 복수였는데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그 구상대로 만들어졌다면 어떤 영화가 나왔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4. 영화의 해석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의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초록은 불륜, 빨강은 사랑, 흰색은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중반부 호텔로 갈 떄의 장만옥 복장은 흰색과 빨간색이 같이 나와있고, 나중에는 빨강으로만 된 옷을 입고 갑니다. 둘이 타고 가는 택시도 빨강입니다. 헤어질 때는 여러 색이 혼합된 옷을 입고 있습니다. 호텔의 2046호는 홍콩의 일국양제가 시행되는 마지막 해라고 합니다. 화양연화가 1997년 홍콩 반환의 전후로 만들어진 영화인지라, 옛 홍콩에 대한 감정을 로맨스로 담은 영화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해석은, 차우와 첸이 각자의 배우자 불륜 때문에 만나서 서로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이 원래 첫눈에 반한 마음이 있었는데 배우자들의 불륜 덕분에 계속 만날 수 있는 빌미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둘은 계속 "우린 그들과 다르니까요"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자신들의 도덕성을 확인하면서 계속 끌리며 만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5, 마무리
이 영화는 서사만 놓고 봤을 때는 특별할 게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두 남녀의 미묘한 사랑을 담아낸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출과 미장센 만큼은 압도적입니다. 넘치지 않고 절제된 장면들과 두 주인공이 스칠 때마다 전해지는 미묘한 감정, 이별을 앞둔 그들이 느꼈을 아픔과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린 아련한 기억들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스토리가 아닌 미장센 연출만으로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는 것, 이 하나만으로도 작품을 감상할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예술 영화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집중해서 보기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항상 평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평소 예술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름다운 미장센과 영상을 눈에 담고 싶다면 꼭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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